<중앙시평>이래도 '受忍한도' 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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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끔찍한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귀가길 괴한에게 성폭행당한 어느여중생이 교실에서 양수가 터져 병원으로 옮기던 중 출산했다는 7월6일자 보도부터 안양의 한 유치원 원장이 2년동안 원생 수십명을 성추행한 7월10일자 보도에 이르기까지 매일 한건씩 보도된 성폭력사건은 우리사회의 땅에 떨어진 성윤리의 현실을 여지없이 드러내 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빙산의 일각이다.어느날 성폭력이 갑자기 늘 리가 없다.김보은양사건을 비롯해 끔찍한 사건들이 이미 우리사회의성도덕과 성폭력의 위험지수를 가리키고 있었다.낙태반대운동연합에따르면 우리나라의 연간 낙태건수는 1백50만건 이고,그 가운데청소년등 미혼모가 3분의1 수준이라고 한다.
곳곳에서 대책을 논의하느라 야단이다.사람들은 성의 무지함을 탓한다.교실에서 양수가 터질 때까지 그대로 있었던 소녀는 차라리 미련하기조차 하다.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성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제안은 그래서 맞다.나아가 성폭력 피해자를 「몸을 망친여자」로 죄악시하는 우리 사회의 편견을 문제삼는 의견도 맞다.
그러나 부족하다.초등학생.유치원생까지 성폭력의 희생물로 전락하는 마당이다.그 가해자는 유치원장.교감.교장.의붓아버지.직장상사.동네아저씨등 멀쩡한 어른들이다.유치원생과 초등학생에게 선생님과 아버지와 동네어른들을 조심하라고 가르칠까, 아니면 치한퇴치술을 가르칠까.
바람피우는 남편을 잠자는 사이 부인이 가위로 그것을 잘라버린사건이 가끔 있었다.고대사회에서는 이런 응보형 형벌제도가 실재했다.그러나 오늘날 그런 형벌을 도입할순 없다.
문제는 가해자가 제대로 형벌을 받고 교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강간범죄의 1.8%만이 신고되며 법원에 기소된 강간사건 가운데 3분의2 정도가 무죄 또는 비실형의 판결이 이루어진다고 한다.안양의 유치원장은 학부모들의 아우성에도 조사조차 받지 않고 있다.어린 여학생들을수없이 추행한 신양중 교감을 관할 교육구청은 다른 학교로 전출보내는 것으로 끝냈다.그 사이 이번에는 인천의 어느 여고 교장이 학생들을 불러 이상한 자세■ 취 하게 하고 사진을 찍어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유치원 아이들조차 안전하지 못한 사회에서 책임이 없는사람은 아무도 없다.무관심과 방관,그것도 우리의 죄다.대낮에 버스 승객을 끌고가 성폭행을 하고,온 동네사람들이 보는 가운데깡패들이 여고생을 끌고가 성폭행하는 것이 우리 사회다.오늘 남의 일이 바로 내일 내 발등의 불이 될 줄을 모르는 바보들이 이 땅에 득실거린다.그 속에 성폭력도,온갖 범죄도 함께 독버섯처럼 피어난다.
죄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이발소.안마시술소.비디오방등 주택인근에까지 침투한 대중접객업소 곳곳이 퇴폐영업장소로 변한지 오래다.밤마다 술집에서 「영계」를 찾는 직장인들이 남의 나라 사내들이 아니다.그러니 가출한 10대,팔려온 1& 대를 내세워 장사하는 곳이 수두룩하다.이렇듯 우리의 술집문화가 바꾸어지지 않고 우리가 그 짓을 계속하는 한 우리의 딸과 누이,부인의 안전도 보장될 리 만무하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있다.성희롱에 재미난 사람이 보다 심각한 성폭행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은 상담전문가들의 공통된결론이다.그럼에도 지난번 서울대조교 성희롱사건에서 법원은 일부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수인한도(受忍限度) 안에 있다고 판결했다.애시당초 수인한도란 있을 수 없었다.수인할 것이 따로 있지 무엇을 수인하란 말인가.그 재판은 대법원에 아직 계류중이다. 지난 한해 미국 연방평등고용위에 신고된 성희롱 사건이 1만5천5백49건,기업이 피해자에게 배상한 금액만도 2천4백30만달러,걸핏하면 한 사건에서 수백만달러의 손해배상이 지급된다.
법원조차도 보호를 거절한 이 나라에서 1991년 실시한 한 조사는 직장여성의 15.4%가 강간.추행등 성폭력을 경험한 것을 보여주었다.이 모든 것이 이나라를 패륜의 성윤리와 성폭력의나라로 만들었다.이래도 수인한도를 말할 것인가.
◇필자 약력▶41세▶서울대중퇴▶단국대사학과졸▶22회 사법시험합격▶검사▶변호사(현)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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