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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세계 <18> 영양사, 식단 짜기부터 예산 집행까지‘작은 CE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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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11일 오전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구내식당. 이곳의 책임자이자 영양사인 시미희(26·아워홈 소속) 점장은 조리 과정을 살피고 직원들을 독려하느라 분주했다. 그는 출근하자마자 5명의 직원과 함께 아침 조회를 한다. 그러곤 바로 식자재 검수에 들어간다. 식당엔 매일 새벽 갖가지 음식 재료가 도착한다. 분량이 맞는지는 물론 상한 것은 없는지 꼼꼼히 들여다봐야 한다. 이후 조리장과 직원들의 위생 상태를 살핀다. 음식이 완성된 뒤 맛과 간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먹어보는 검식도 영양사의 중요한 업무다. 배식이 시작되기 30분 전. 마지막으로 메뉴판에 원산지 표시가 제대로 됐는지, 청소는 깨끗이 됐는지 다시 한 번 살핀다. 배식이 끝나면 다음날 식재료를 주문하고, 각종 회계 관련 업무도 처리한다.

영양사는 말 그대로 영양만 챙기면 되는 직업이 아니다. 상당수 급식소에서 이들은 식단을 짜는 일뿐 아니라 직원과 고객을 관리하고, 예산도 짜고 집행하는 일까지 도맡아 한다. 작지만 독립된 하나의 사업장을 운영하는 ‘작은 최고경영자(CEO)’인 셈이다.

◆식당의 지휘자=하나은행 본점 구내식당의 경우 점심을 먹는 직원만 하루 400명에 이른다. 돌발상황이 생길 때도 있다. 폭설이 내려 식자재 공급에 차질이 생기거나 식기 세척기가 갑자기 고장날 수도 있다. 음식은 매뉴얼대로 조리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 그날그날 맛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들이 잘 짜인 오케스트라처럼 움직이지 않으면 정해진 시간 내에 수백 명의 식사를 준비하기 힘들다. 영양사는 말하자면 오케스트라를 끌고 나가는 지휘자 격이다.


시 점장은 “한마디로 식당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은 내 책임”이라며 “꼼꼼함은 물론 순발력이 필요한 직업”이라고 말했다. 현직 영양사들을 대상으로 한 인크루트의 설문조사에서도 현직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으로 ‘강한 체력’과 ‘판단력’, 그리고 ‘의사결정 능력’을 꼽은 경우가 많았다.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사회 초년병 시절부터 연배가 위인 직원들과 함께 호흡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수백 명에 달하는 고객 관리도 맡아야 한다. 인크루트의 설문에서 채용 면접 시 가장 중요시되는 항목으로 ‘전문지식’보다 ‘소통 능력’ ‘대인관계’ 등을 꼽은 영양사가 많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시 점장처럼 전문 위탁급식 업체에 소속된 경우에는 여러 종류의 사업장에서 근무하게 된다. 식당이 들어가 있는 곳이 학교냐, 기업이냐, 병원이냐에 따라 메뉴는 물론 고객에게 접근하는 방법이 다르다. 또 기업 내 식당이라도 업종에 따라 고객의 특성이 다르다. 그는 “신문사 구내식당에서 근무할 때는 메뉴판의 철자법이나 표현에 특히 신경이 쓰였다”면서 “은행원들은 음식의 맛은 물론 서비스까지 철두철미하게 평가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영양사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가급적 다양한 조직에서 경험을 쌓으라고 권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 점장은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접해 보는 것이 식품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식품영양학 전공해야=상시 50명 이상에 식사를 제공하는 집단급식소에는 영양사가 있어야 한다. 현재 전국적으로 3만여 명의 영양사가 활동하고 있고, 이 중 80% 이상은 집단급식소에서 근무한다. 이 밖에 식품회사나 보건소에 근무하거나 연구직으로 진출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나 병원의 경우 직접 식당을 운영하기도 하지만 기업들은 위탁급식업체에 맡기는 비율이 70%에 달한다. 자연히 이들 업체에 소속된 영양사도 늘었다.

영양사가 되려면 대학에서 식품학 혹은 영양학을 전공해야 한다. 이들에게만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영양사 시험은 보건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서 매년 실시한다. 시험 과목은 영양학·생화학·식품위생학·식품위생법규단체급식관리 등 다양하다. 학교의 영양교사가 되려면 교직과목을 이수하고 교원 임용시험에도 합격해야 한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영양사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2512만원이었다.

조민근 기자
자료협조:인크루트 www.incruit.com



CJ프레시웨이 김희선 영양사 “입맛 다른 고객들 공통분모 찾기 골몰”

CJ홈쇼핑 본사 식당을 총괄하는 CJ프레시웨이 소속 김희선 영양사는 “현직 영양사들은 요리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이 많다”며 프로 의식을 강조했다. [박종근 기자]

서울 서초구 CJ홈쇼핑 본사 식당을 총괄하는 김희선(CJ프레시웨이) 영양사는 현업 8년차로 이 바닥에선 고참급이다. 그간 대기업 본사는 물론 공장, 대학의 구내식당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그는 “고객들의 기호가 갈수록 다양해져 영양사의 업무도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다”면서 “한 사업장을 책임지고 경영하면서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가장 힘든 점은.

“식당은 말이 많이 나오는 곳이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짠 음식, 어떤 사람은 싱거운 음식을 좋아한다. 다양한 기호를 만족시킬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귀가 얇아서도 안 된다. 이런 저런 요구에 그때그때 따라가다 보면 음식이 매일 널뛰기하듯 변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 새로운 트렌드에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자신만의 원칙을 세워가는 게 어렵지만 중요한 일이다.”

-요리를 잘해야 하는가.

“요리 실력은 기본이다. 조그만 식당에서도 주인이 요리법을 아는 곳과 종업원들에게만 맡기는 곳은 큰 차이가 난다. 이 때문에 현직 영양사 중엔 따로 요리 공부를 계속 하거나 음식 장식하는 법을 배우는 경우도 많다.”

-처음 일을 시작하던 때와 뭐가 달라졌나.

“예전에는 시간 맞춰 음식을 내놓기만 하면 큰 문제가 없었다. 고기 반찬이 얼마나 나오느냐에 따라 만족도가 결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구내식당에서도 음식이 아닌 요리를 찾는다. 단순히 맛있기만 해선 안 되고 보기에도 좋고 건강에도 도움이 돼야 한다. 즐기며 식사할 수 있도록 각종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영양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서비스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식품에 대한 지식은 기본일 뿐이다. 웬만한 조리법이나 식단 구성은 이미 매뉴얼화돼 있다. 현직에 나오면 식당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고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더 고민하게 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춰야 하고, 학교에서도 이와 관련한 교육 과정을 늘려야 한다.”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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