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프런트는 겉돌고, 선수들끼린 ‘성골-진골’ 따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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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LG 트윈스. 꼴찌 팀. 솔직히 말하자면 새로울 것 없는 얘기다. 2008시즌 시작과 거의 동시에 LG는 하위권에 둥지를 틀었으므로. 항상 이렇다 할 말이 없는 김재박 LG 감독은 한국 야구가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훨씬 전부터 “내년 시즌을 준비한다”는 말을 읊조리고 있었다.

최하위 LG? 놀랄 일이 아니다. LG가 언제 명문 구단이었던가. V9의 위업을 이어받은 해태의 후신 KIA도 아니고, 뚝심과 끈기의 두산도 아니다. ‘야구 도시’ 부산의 팀, 그래서 만년 꼴찌였어도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는 특혜를 받은 롯데도 아니다. LG는 1989년 MBC 청룡을 인수해 이듬해 첫 우승을 했고, 1994년에 두 번째 우승을 기록했을 뿐이다.

그래도 그게 그렇지 않다. 청룡 시절부터 이어져 오는 골수 팬에게, LG가 ‘LG냐, 두산이냐’라는 선택의 절반이라는 현실은 피를 토할 일이다. 그러나 현실이다.

LG의 더그아웃 분위기는 시즌 초반부터 밝았던 적이 없다. 지기 바빴으므로. 선수들의 표정에서는 체념이 느껴진다.


혹시나 남아 있을지 모를 LG 팬은 서울의 세 팀 가운데 하나며 그것도 선뜻 잡고 싶지 않은 선택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아직도 ‘신바람 야구’ 운운하며 프라이드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을지 모를 구단주와 사장, 그리고 선수단도 마찬가지다.

2008년 현재 LG는 서울에서 두산-히어로즈에 이은 3등 구단이고, 청룡 시절부터 이어져 온 골수 팬마저 잃어 가고 있다. ‘서울 야구의 큰아들’이란 자부심은 일찍이 대전에서 ‘입적’한 업둥이 두산(전 OB)에 빼앗긴 지 오래라는 얘기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정설은 잦은 감독 교체, 거듭되는 성적 부진의 악순환을 통해 팀이 서서히 붕괴돼 갔다는 것이다. LG의 붕괴는 김성근 감독의 해임과 궤를 같이한다. 2002년 준우승 감독이 그해 한국시리즈 종료 후 ‘잘렸다’. LG의 야구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LG의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당시 나는 세 곳에서 시달렸다. 고참 선수들이 김성근 감독과는 더 이상 야구를 하지 않겠다고 사보타주를 했고, 몇몇 LG 출신 코치가 2군행을 자처할 정도로 코칭스태프 간 알력이 심했다. 위에선 진상 규명을 하라고 했고… 결론은 김 감독의 해임이었다.”

김 감독의 갑작스러운 해임은 프로야구 8개 구단 가운데 최초로 스포츠단을 꾸렸고 나름대로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지원 체계를 갖췄다고 자부해 온 LG 프런트의 색깔을 제대로 보여주는, 꽤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LG는 지난해 다른 팀의 에이스(두산 박명환)도 모셔오고, 또 다른 기둥인 주전 포수(조인성)를 FA 최장기인 4년 계약으로 재계약했다. ‘팀의 구심점이 없다’는 지적이 안팎에서 일자 2006시즌 이후엔 프랜차이즈 최고 스타 출신인 김재박 감독을 현대에서 영입했다.

김재박이 누군가. 현대에서 네 차례나 우승을 일궈 낸 명장 아닌가. LG 프런트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왜 우리가 현대보다 못하는가’라는 의문을 풀지 못했고 답은 ‘영입’으로 결론 났다. 2000년 이후 감독 교체만 다섯 차례(이광은-김성근-이광환-이순철-김재박)다. 프런트 입김이 어느 곳보다 강한 LG가 김재박 감독 영입과 동시에 ‘감독의 야구’ 쪽으로 방향 전환을 시도했다.

‘프런트’로 대변되는, 이른바 LG 구단주의 야구 사랑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선수들을 직접 경남 진주 인근 단목리로 초대하는, ‘단목 행사’는 유명하다. 올 초 구단주로 취임한 구본준 LG상사 부회장은 배번 11이 새겨진 유니폼을 받아들고 “(지명타자 포함) 10명의 선수를 받쳐 주는 11번째 선수가 되겠다”고 취임 일성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말이 더 의미심장하다. “관중만 많이 오는 것에서 만족할 수 없다”며 직접적으로 ‘성적’을 요구했다.

LG를 잘 아는 야구인은 다시 LG의 해묵은 숙제, 프런트와 ‘현장’의 괴리가 드러났다고 본다. 현장에서 요청한 FA 영입 작업이 구단주에 의해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다른 팀에서 노장을 데려다가 야구 하는 건 LG 야구가 아니다”는 꾸중이 내려왔다. 글쎄. 요란하게 입단식을 한 LG 신인 가운데 주전으로 뛰는 선수가 있던가?
LG는 인기 주전 선수의 사보타주가 용인된 팀이다. 매번 선수 손을 들어줬다. 2000년대 초반 구원왕을 한 번 차지했으나 이후 잦은 음주 파동 등으로 사고를 친 신윤호가 올 시즌 중반에야 방출(현 SK)됐다.

이순철 감독과 야구관이 맞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린 포수 조인성은 지난 시즌이 끝난 뒤 FA 계약에 성공했고, 올해엔 2군을 들락거리고 있다. 4년에 34억을 받는 포수가 2군에 있고 2년 전 마스크를 벗고 프런트로 일하던 김정민이 주전 포수로 뛰고 있다.

6년여 2군 생활 끝에 올 시즌 주전 선수가 된 안치용. 2군에서 그는 이른바 ‘성골’이었다. LG 2군엔 성골-진골이 있는데,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온 선수들은 성골, 부상으로 잠시 2군에 머무르는 선수들은 진골이다. 2군에도 스타가 따로 있는 우스꽝스러운 팀이 LG다.

프런트의 감식안도 의심스럽다. 지금 클린업 트리오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최동수는 야구 유니폼을 수차례 벗을 뻔했던 그저 그런 선수였다. 2003년 입단했다가 이듬해 KIA에 넘겨준 이용규의 맹활약에 대해 LG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LG의 FA 계약은 쉴 새 없이 잔혹사를 써 내려왔다.

김재박 감독

김재박 감독과 선수들에게는 책임이 없나. 김 감독은 “선수들의 작전 수행 능력(이를테면 김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인 번트)이 매우 떨어진다. 투수진도 선발과 중간·마무리 모두 약하다”고 되뇐다. 그게 어제오늘의 일인가. 김 감독이 LG에 부임한 지 만 2년째가 돼 간다. 문제가 지적된 지 4년이 지났다. 그 문제를 해결하라고 김재박 사단(정진호 수석코치, 김용달 타격코치)을 기용한 것 아닌가.

지난 7일 LG-SK의 잠실 경기. 0-5로 지고 있다가 9회 말 끝내기 안타(서동욱)로 역전승한 LG 선수들이 환호했다. 한국시리즈 우승팀의 세리머니를 연상케 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청룡 시절부터 줄곧 팬이었던 한 골수 팬은 “어처구니없고, 가증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이것이 현재의 LG 선수들이다.

LG 선수들은 얄미울 정도로 야구판의 이치를 잘 안다. 선수들이 결국 감독과 단장을 ‘잡아먹는다’는 사실. 여기 좋은 예가 있다. 뉴욕 메츠가 시즌 초반 윌리 랜돌프 감독을 해고하자 이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랜돌프가 투수인가. 랜돌프가 타자인가. 천만 달러 넘게 받는 선수들에게는 왜 책임을 묻지 않는가? 단장이나 감독을 똑똑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것도, 거꾸로 바보처럼 만드는 것도 다 선수다.”

김성원 기자 rough197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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