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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닮은 비누 다섯 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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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 홍석만·이윤리·이지석·박건우. 이들은 모두 지금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장애인 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들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생소한 이름들이다. 그만큼 세간의 관심은 지난 6일 개막해 오는 17일까지 계속되는 베이징 장애인 올림픽을 비껴가고 있다. 그나마 폴란드의 외팔 탁구선수 나탈리아 파르티카와 남아공의 외다리 수영선수 나탈리 뒤 투아 등 장애인이지만 비장애인들과 나란히 올림픽에서 뛰어 커다란 감동의 물결을 일으켰던 이들이 다시 한번 장애인 올림픽에서 투혼을 불살라 그 관심의 불꽃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정도다.

 # 며칠 전 신문사로 작은 상자 하나가 배달되었다. 열어 보니 보름달처럼 하얗고 둥근 알로에 비누 다섯 개가 들어 있었다. 보낸 이를 살피니 ‘희망일터’였다. 물론 그전에 ‘희망일터’에서 전화가 걸려와 장애인들이 만든 비누를 구입해 달라고 해서 승낙한 후 보내온 것이었다. 비누를 받고 나서 나는 즉시 비눗값으로 책정된 5만원을 부쳤다.

# 장애인들의 일터인 ‘희망일터’를 알게 된 것은 몇 해 전 장애인들이 만든 황토비누를 구입해 쓴 다음부터였다. “장애인들이 만든 물건이니 한 번만 도와달라”는 전화 속의 낯선 목소리가 너무 애절해서 차마 매정하게 거절할 수 없어 구입한 황토비누였다. 물론 시중에서 판매하는 비누에 비해 가격도 비쌌고, 너무 쉽게 물에 풀어져 쓰는 데 다소 불편했지만 맘은 오히려 편했다.

# 사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비누나 양초 혹은 한방차 등을 구매하고 값을 치른 분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기꺼운 마음으로 했겠지만 어떤 이들은 그런 것이 실은 장애인들의 이름만 내세우고 있지, 실속은 사지 멀쩡한 다른 사람들이 챙기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오해 때문인지 내게 보내온 비누 상자 안에는 ‘희망일터’에서 일하는 장애인들의 이름과 그들의 장애유형을 밝힌 편지 및 그들이 일하는 사진도 첨부됐다. 그만큼 세상의 메마르고 의심 어린 눈총이 적잖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어쩌면 ‘희망일터’에서 일하는 장애인들은 두 가지 편견과 싸우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하나는 장애 자체에 대한 편견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장애를 극복하며 살려고 발버둥치는 노력마저 의심하는 세간의 편견이다.

# 무관심하고 냉정한 비장애인들의 편견도 문제지만, ‘희망일터’와 같은 장애인 기업들도 변해야 한다. 이를테면 비누를 만들더라도 그냥 모양 없이 기계로 찍어낼 것이 아니라 손끝으로 매만진 비누를 만들면 더 좋지 않을까. 요즘은 그런 ‘손맛을 담은 비누’가 훨씬 더 부가가치 높게 팔리기 때문이다. 아울러 하루에 100통의 전화를 해도 한두 사람이 응할까 말까 하는 식의 읍소형 마케팅 방법이 아니라 더 좋고 세련된 상품에 이야기까지 담아 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해야 한다. 마치 나탈리 뒤 투아나 나탈리아 파르티카가 올림픽에서 비장애인들과 당당히 겨뤘던 것처럼 말이다. 아울러 장애인들이 정성 들여 만든 비누와 양초 등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삶의 희망 메시지를 한 줄씩만이라도 담아보자. 그래서 ‘희망일터’ 물건이 정말 좋다는 입소문과 함께 그것을 받아본 사람들이 감동받아 기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그 물건을 소개하게 될 만큼 해보자.

 # 추석이다. 크고 둥근 보름달은 장애인에게든 비장애인에게든 모두 똑같다. 다만 달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일그러져 있으면 둥근 보름달도 찌그러져 보이게 마련이다. 결국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는 우리 몸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 크고 둥근 보름달에 우리 자신을 비춰볼 일이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