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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마저 발 빼자 … 리먼 인력 유출 본격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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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동료 직원들은 이미 이력서를 써놓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10일 오전(현지시간) 리먼브러더스의 한 직원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뒤숭숭한 회사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158년 회사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인 39억 달러의 분기 손실을 낸 리먼은 극심한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산업은행과의 지분 매각 협상마저 결렬되자 직원들은 “베어스턴스의 운명을 되밟는 것 아니냐”며 동요하고 있다. 올 3월 헐값에 JP 모건으로 넘어간 베어스턴스의 직원 중 절반이 이미 해고된 상태다.

새 직장을 구하려는 직원들도 늘고 있다. 자본시장 사업부 소속 한 직원은 “이미 탈출이 시작됐다. 나도 하루 이틀 더 고민해 본 뒤 결정을 내릴 생각”이라고 전했다. 핵심 인력이 빠져나가면서 리먼이 정말 빈껍데기만 남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진짜 걱정거리는 리먼의 조직문화에 익숙했던 직원들이 쪼그라들고 장래도 불확실한 조직에서 견딜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리먼이 발표한 자구안에 대해 시장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리먼은 이날 증시 개장 전 자산운용계열사 누버거버만 지분 55%를 매각하고 상업용 부동산 자산을 분리하는 내용의 자구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날 리먼 주가는 7% 가까이 떨어졌다. 이날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리먼의 신용등급을 검토 대상에 포함시켰다”고 발표했다.

월가의 관심은 이제 ‘다음 타자’를 찾는 데 쏠리고 있다. 먼저 떠오르는 곳은 미국 최대 저축은행인 워싱턴뮤추얼이다. 모기지 부실 때문에 앞으로 2년간 최대 190억 달러의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워싱턴뮤추얼의 주가는 10일 29.7% 폭락한 2.32달러를 기록했다. 세계 최대 보험사인 AIG에 대한 시장의 우려도 크다. AIG 주가는 9, 10일 이틀간 25%나 빠지며 불안감을 키웠다. S&P의 애널리스트 캐서린 사이퍼트는 보고서를 통해 “AIG가 모기지 대책을 내놓을 때까지 주식을 매입하지 말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한편 조지 소로스 등 쟁쟁한 투자 귀재들도 ‘리먼 쇼크’를 피해가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 통신은 10일 소로스가 운영하는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는 올 3월부터 6월까지 리먼 주식 947만 주를 사들였다고 전했다. 이로 인한 손실액은 1억2000만 달러로 추산됐다. 이 밖에 얼라이언스번스타인이 2800만 주, 웰링턴 매니지먼트가 1900만 주 등 적지않은 투자회사들이 올해 리먼 주식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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