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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 법칙' 9년 만에 Off…삼성전자 "양산기술 집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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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

삼성전자는 해마다 메모리 반도체의 용량을 두 배로 늘린 제품을 내놓았다. 이를 주도한 황창규 사장의 이름을 따 ‘황의 법칙’이란 이름도 붙었다. 하지만 올해는 9년 만에 ‘황의 법칙’을 접기로 했다. 신제품 개발력을 과시하기보다 생산비용을 줄이는 기술 개발에 힘을 쏟는 쪽으로 연구개발(R&D) 정책을 전환하겠다는 뜻이다.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현 상황에 대응한 변신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매년 9월 열던 반도체 신제품 발표회를 올해부터 하지 않겠다고 11일 밝혔다. 이 회사는 1992년 세계 최초의 64메가비트(Mb) D램 개발을 시작으로 거의 매년 ‘세계 최초’ 행진을 벌여 왔다. 이 때문에 ‘기술 선도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쌓았다. 특히 99년 256Mb 낸드플래시를 개발한 후 매년 두 배 용량의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지난해에는 64기가비트(Gb) 낸드플래시를 선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황창규 전 반도체총괄 사장(현 기술총괄 사장)은 200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반도체회로학술회의(ISSCC) 총회에서 ‘황의 법칙’이라 불리는 메모리 신성장론을 주창했다. 황 사장은 지난해까지 9년 연속 이 법칙을 스스로 입증했다.

황 사장은 올해 기술총괄로 자리를 옮겼다. 자연스레 반도체 설명회가 사라지면서 ‘황의 법칙’도 유명무실해졌다. 삼성전자 측은 “대외적인 발표를 그만둔 것이지 128Gb 제품 개발에 실패한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올 2월 128Gb 낸드플래시를 만들 수 있는 ‘3차원 셀 스택 기술’을 개발했다는 것. 이 기술은 완제품 칩을 여러 층으로 쌓아 큰 용량의 제품을 만드는 것처럼 제조 단계에서부터 데이터를 저장하는 셀을 아파트 짓듯 복층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 안에 시제품을 내놓을 예정이 없다고 밝혔다. 또 20나노 미세기술도 내놓지 못했다. 이로써 실질적으로 황의 법칙은 폐기된 셈이다.

대신 양산 쪽에 신기술을 적용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3차원 셀 스택 기술을 활용하면 얼마든지 차세대 제품을 만들 수 있지만 그보다 우선 양산품인 32Gb와 64Gb 제품에 적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내년부터 이 기술을 적용한 낸드플래시의 양산에 들어가면 생산성이 경쟁사보다 30% 정도 향상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가격이 급락하는 D램 및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더 높은 수익성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권오현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은 10일 “지금은 쇼업(show up·드러내기)보다는 프랙티스(practice·실행)에 집중할 때”라고 했다. 최근 연구인력도 생산성 향상 쪽에 집중 배치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이런 방향 선회로 적자에 허덕이는 미국 마이크론, 대만 난야·파워칩 등 후발 업체들은 더 큰 원가 압력에 시달리게 됐다. 2~3년 후의 선행 기술보다 당장 1~2년 후의 양산 기술에 힘을 결집해 끝을 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 엘피다 등이 감산을 선언하고 하이닉스·마이크론 등이 인력 감축, 투자 연기에 나서는 등 반도체 업계는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삼성전자의 새 전략이 단기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증권업계 한 기업분석가는 “삼성전자가 경쟁사와 6개월~1년의 기술격차를 유지해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심리적 압박을 줬던 것도 사실”이라며 “황의 법칙 포기가 이런 기술우위를 상실하는 단초가 되지 않길 빈다”고 말했다.

김창우 기자

◆황의 법칙=메모리 반도체의 용량은 해마다 두 배씩 증가하며 PC가 아닌 모바일 기기와 디지털 가전제품이 그 성장을 주도할 것이라는 이론이다. 반도체의 집적도가 18개월마다 두 배로 성장한다는 ‘무어의 법칙’을 대체한 이론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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