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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아동학대 대책 시급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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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주 어느 일간지에서 부산의 한 아버지가 불량한 딸을 훈육하려고 때린 것이 잘못돼 딸이 사망했으나,담당판사가 「정상」을참작해 영장을 기각했다는 기사를 읽었다.참으로 걱정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같은 살인도 타인에 의한 것이면 중죄(重罪)요,아버지에 의한 것이면 무죄란 말인가.
이 사례는 체벌은 그 정도가 아무리 심해도 훈육(訓育)과 교육을 위한 것이면 얼마든지 행해도 좋다는 잘못된 사회통념을 다시 한번 확산시키고 조장하는 사건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훈육을 목적으로 체벌을 사용한다는 부모는 80%에 이른다.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이중에서 10%를차지하는 다발성(多發性)체벌은 타박상은 물론 장골(長骨)골절.
장파열,심지어 두개골(頭蓋骨)파열 등 의학적 치 료를 요(要)할 정도로 심각한 결과를 낳고 있으며,그중 상당수가 그로 인해사망하기도 한다(연간 24명).아무리 교육적 필요에 의해 행해지는 체벌이라 해도 체벌을 받은 아동의 10%가 한달에 한번 이상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 의 상처를 받는데 과연 그것을 「사랑의 매」라 할 수 있겠는가.
가정내 성폭력도 마찬가지다.타인에 의한 성폭력은 즉시 형사처벌이지만,아버지의 딸에 대한 성폭행은 친고죄(親告罪)로 피해자고소 없이는 법적 조치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흐지부지되고 만다.우리나라의 경우 성폭력의 30%는 가정내에 서 이뤄지는 것으로 집계돼 있다.
이같은 현실에서 최근 가정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가정폭력대책을 위한 입법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이 과정에서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몇가지 문제점을 미리 지적해두고자 한다.
우선 가정폭력법에서 아동에 대한 폭력,즉 가족내 아동학대가 무시되거나 경시돼선 안되겠다.일반적으로 가정폭력이라고 하면 부부폭력만 생각한다.그동안 아내구타에 대한 조사나 입법추진이 주로 여성단체에 의해 이뤄져 자칫하면 가정폭력이 바 로 아내구타인 것으로 인식하고 아동학대를 부차적(副次的)인 것으로 취급하기 쉽다.그러나 실상은 아동학대 비율(8.6%)이 아내구타(4%)보다 두배이상 높다.
뿐만 아니라 아동학대는 신체적 상처는 물론 후유증도 크다.학대를 받은 아동중 3분의1이 정신지체나 뇌손상을 보이고 있다.
학대를 받은 아동들은 정서적 불안증세를 보임은 물론,성격이 난폭해져 후에 자신이 성인이 됐을 때 아내구타.자식 구타를 할 가능성이 크다.이렇게 볼 때 아동학대는 가정폭력의 주종(主宗)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앞으로 가정폭력 대책을 마련함에 있어 학대아동의 법적 보호를 위한 금지조항을 정함은 물론 가정폭력을 목격한 사람이면 누구나 신고하도록 하고,가정폭력사실을 알게 된 의사.전문가들은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규정해야 한다.학대아 동이 발견됐을 때 누가,어떻게 조치할 것인가도 포함돼야 한다.
이와 함께 담당공무원이나 전문가에게 조사.평가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야 하며,가해자에 대한 형벌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또 피해자를 위한 일시적 격리보호,일시적 가정위탁,적절한 응급치료 또는 영구입양 등 후속조치를 위한 방법.시 설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오는 21세기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폭력의 문제가 될 것이다.가정내 폭력근절과 예방 없이는 우리 자녀들이 건강한 몸과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회인으로 성장하리라 기대할 수 없다.가정폭력 그리고 교사들의 학생들에 대한 폭력에 대한 효과적 조치 없이 청소년범죄소탕과 학원폭력근절을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가정폭력의 효과적 예방은 우리가 추구하는 선진복지국가를 위해반드시 필요한 요건임을 명심해야 한다.
홍강의 서울대교수.소아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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