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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1388’ 위기 청소년 구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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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학교를 못 가겠어요. 어쩌죠’. 새벽 1시, 상담원 이유리(27·여)씨의 모니터에 메시지가 떴다. 고교생 이진경(16·가명)양이 휴대전화로 보낸 문자 메시지(SMS)였다. ‘옆방에 부모님이 있다’며 통화를 거절한 이양은 SMS로 고민을 털어놓았다. 남녀 공학에 재학 중인 그는 헤어진 남자 친구로부터 협박을 받고 있었다. ‘다시 만나지 않으면 성관계 사실을 소문 내겠다’는 것이다.


학교·부모에게 알려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우울증 증세까지 보였다. 상담원은 이양을 대신해 관할 경찰과 협의키로 약속했다. 1시간여 동안 100여 통의 문자를 나눈 상담은 ‘내일 저녁 다시 만나자’는 약속으로 끝났다. 이양의 마지막 문자는 ‘제 맘 알아주셔 감사. 샘도 어서 주무삼 *▶▶*’이었다.

휴대전화 SMS로 위기 청소년을 상담하는 ‘모바일 상담 M1388’이 개통 1년6개월을 맞았다. 8일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상담한 청소년은 2만5000명이다.

◆유비쿼터스 상담=상담은 청소년이 고민을 적은 SMS를 ‘#1388’로 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상담원 31명이 3교대로 24시간 대기한다. 2분 내 응답이 원칙이다. SKT 가입자는 무료, KFT·LGT는 1통당 100원이 든다.

2007년 3월 국가청소년위원회(현 복지부)와 SK텔레콤, 비영리법인 ‘동서남북 모바일 커뮤니티’가 각각 상담원 인건비, 통신망, 매뉴얼·시스템을 지원하면서 세계 최초 ‘모바일’ 상담이 시작됐다. 조진서 동서남북 본부장은 “청소년 열 명 중 여덟이 휴대전화를 쓰고 97%가 통화보다 문자를 선호하는 현실에 착안했다”고 밝혔다.

얼굴·이름을 모르는 SMS의 ‘한계’가 상담엔 ‘약’이 된다. 상담원 봉혜경(42·여)씨는 “대면 접촉의 학교 상담실은 부모·교사에 ‘떠밀려’ 찾지만 모바일은 스스로 찾아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한 달 전 낙태 수술을 받은 최모(18)양은 ‘악몽에 시달린다’며 상담을 청했다. 수술에 대한 죄책감과 남자 친구가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상담원은 최양에게 편지를 쓰고 읽어 주는 심리치료를 제안했다. 올바른 피임법과 배우자상도 조언했다.

8월 박모(15)군은 ‘FPS(1인칭 슈팅 게임)에 빠졌다’며 SMS를 보냈다. 하루 3~4시간 게임에 몰두하다 보니 두통과 구토 증세를 보였다. 상담원은 최군과 게임을 즐기던 저녁 시간에 맞춰 문자 상담을 할 것을 약속했다.

휴대전화 문자 상담의 특성은 ‘언제 어디서나’ 상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이모(19)양은 ‘죽고 싶다. 4층 옥상이다’는 문자를 보냈다. 가출 뒤 진 빚때문에 안마시술소에 들어간 직후였다. 상담원은 이양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지역 경찰에 신고, 이양을 구출했다.

오프라인 쉼터와 연계해 가출 청소년에게 머물 곳을 안내하기도 한다. 상담사·복지사 자격증을 가진 상담원들도 ‘소시(소녀시대) 어때요’ ‘법사(법과 사회) 가기 싫어요’ 같은 채팅어에 난감할 때가 많다.

그래서 청소년들과 대화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어 공부한다. 봉씨는 “‘옥상 위에 있다’며 문자를 보낸 뒤 ‘ㅠㅠ’만 보내는 학생과 상담하면 피가 마른다”고 말했다. 시험 기간엔 성적 고민, 밸런타인 데이엔 이성 고민이 몰린다. 상담원 한송이(29·여)씨는 “드라마에 자살 장면이 나오자마자 쏟아지는 자살 상담에 당혹스럽다”며 방송사의 주의를 당부했다.

천인성·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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