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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Holic] 두 바퀴로 미국 7000㎞ 누빈 ‘바이크 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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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북미대륙을 자전거로 달린 차백성씨. 서울 여의도 자전거도로에서 미국 여행에 함께했던 자전거를 세워놓고 포즈를 취했다. [김태성 기자]

차백성(57)씨는 49세이던 2000년 겨울, 넥타이를 풀었다. 자전거로 세계를 누비고 싶다는 소년시절 꿈을 이루기 위해 대우건설 상무이사 명함을 버린 것이다. “다리에 힘이 더 빠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세계를 두 바퀴로 달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전거 전업 여행가’의 길을 택한 그는 북미·서유럽·아시아를 넘나들며 해외 원정을 다녔다. ‘바이크 차’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는 질주의 추억을 담아 『아메리카 로드』(미래인)라는 책을 최근 펴냈다. 유난히 파란 바다가 인상적이었던 하와이의 오아후 해안도로에서 인디언의 아픈 역사가 숨 쉬는 몬타나의 대평원까지, 지칠 줄 모르고 달렸던 7000㎞의 궤적을 기록했다. 그에게 만남을 청하자 역시나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다. 미국 중서부 여행에 동반했던 자전거를 타고 온 그는 계속해서 애정 어린 눈으로 자전거를 살폈다. 그러면서 “자전거를 타는 게 생활이고 자전거를 닦는 게 취미”라고 밝혔다. 차는 10년이 훌쩍 넘은 중형차를 몰면서 자전거는 럭서리 급이다. 지금 가진 자전거 5대의 값은 중형차 서너 대보다 비싸다.

차씨의 자전거 사랑은 어린 시절 시작됐다. 중2때 이모에게 자전거를 선물 받고는 설레는 마음에 잠도 못 이뤘다고 한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게 다 있나 싶었어요. 두 바퀴를 내 몸의 일부로 삼아 어디든 달려갈 수 있다는 데 본능적으로 끌렸습니다.”

밖을 나설 때는 거의 대부분 페달을 밟았다. 한국인 세계여행 1세대였던 고 김찬삼 선생의 여행기를 읽으며 세계에 대한 로망을 키웠던 그는 ‘자전거 여행계의 김찬삼’을 꿈꿨다. 꿈을 위한 첫발을 내디딘 건 고2때. 돈암동 집에서 출발, 폭우를 뚫고 추풍령을 혈혈단신 달려 넘어 나흘 만에 대구 친척집에 도착했다. 그에게 자신감을 준 첫 도전이었다. 그 뒤 대우건설에 입사해 아프리카 수단·나이지리아 등에서 10년을 근무하면서도 ‘세계 자전거 여행’에 대한 꿈은 버리지 않았다. 휴가 때마다 자전거 여행을 다니던 그는 결국 사표를 냈다.

세계 각지를 자전거로 섭렵하면서 부러웠던 건 외국의 성숙한 자전거 관련 의식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면 많은 자동차 운전자들이 속도를 줄여줬어요. ‘행운을 빈다’는 덕담까지 건네는 사람도 많았죠.”

그런데 한국은?

“‘자전거가 감히 자동차에 덤벼?’라는 심리가 아직 있어요. 자전거로 도로를 달리는 건 한국에선 아직까지 목숨을 내놓은 모험인 경우가 많아요.”

근래 자전거 인구가 증가하는 건 환영할 일이지만 준비가 덜 되어 있어 걱정이 앞선다.

“미국이나 유럽은 도로에 자전거 전용 도로·신호가 별도로 마련된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한국에선 아직 자전거 관련 별도 법규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지요.”

미국에서 체험한 제도적 장치도 귀띔했다.

“자전거로 터널을 지날 사람들이 진입 전에 버튼을 누르면 터널 상단에 있는 자전거 주의 표시등에 불이 들어와요. 그럼 그 표시를 보고 자동차 운전자들이 속도를 줄이고 자전거를 배려하는 거죠.”

동시에 자전거족에게도 일침을 가했다. 한강변을 자전거로 달리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보세요, 헬멧이나 장갑조차 갖추지 않고 질주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에요”라고 혀를 찼다. 그는 남들이 나를 보호해주길 바라기 전에 스스로 먼저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밤에 안전등도 켜지 않은 채 도로를 달리는 사람도 있어요. 운전자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가슴이 철렁하겠어요.”

그의 자전거 세계일주는 현재진행형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희망봉까지 아프리카 대륙을 종단하는 게 필생의 목표다. 가능하면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맞춰 해볼 생각이다. 가깝게는 동유럽 일주도 계획하고 있다.

전수진 기자 ,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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