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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친정물건 집어오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얼마전 출산을 하고 몸조리를 위해 한달 남짓 친정에 머물렀다.119 긴급 구조대같은 친정 어머니 덕분에 웬만큼 회복이 되어 돌아올 준비를 했다.그런데 그때부터 슬슬 딴마음이 들기 시작하는 거였다.
「이 물컵은 색상이 참 독특하네」「웬 손수건이 포장도 뜯지않은 채 이리도 많담」「베란다 분재들이 물이 올라 오동통하니 난리가 났구만」 등 한마디로 남의 떡에 더 눈이 가는 심사였다.
평소에도 들락거리며 쓸만한 것은 다 집어오곤 했었 는데….
『이 컵들은 어디서 샀어요.다 고만고만한 철쭉들을 뭐하러 저리 모아뒀어요』하고 바람을 잡으니 어머니가 『아서라,그냥 관심꺼줬으면 좋겠다』고 하신다.어머니의 방어가 만만찮다.드디어 돌아오는 날 읽고 돌려주겠다며 자연스레 책 몇권을 가방에 넣자 어머니는 『그렇게 해서 돌아온 책 한권도 없다』며 맞받아치셨다.내가 자꾸 베란다 쪽 문을 여닫으며 힐끗거리는 것을 보곤 『애꿎게 찬바람을 왜 자꾸 쐬니』라며 야단치시고는 이내 『어느 걸로 가져갈래』하고 물으셨다.
임무완수한 사람처럼 집에 돌아와 뿌듯한 마음으로 가져온 물건을 하나하나 정리해 놓고나니 그제서야 조금 미안해졌다.필요한 것 못살 형편도 아닌데 왜 그렇게 친정에만 가면 그냥 오기가 허전해지곤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그래서 딸을 도둑 이라 하나보다. 왠지 선뜩 내켜 하지 않아 보였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라마음이 새침해져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엄마,생각해보니 나무 잘 키울 자신이 없어요.내일 박서방 편으로 다시 보낼께요』라고 했다.그랬더니 어머니는 『2~3일에 한번씩 물 만 주면 돼.그건 처음부터 너 주려고 했던 거야.우리집에 있던 물건들을너네 집에 가서 다시 보면 낯설지 않고 마음 편해서 좋아』하시는 것이 아닌가.별안간 코끝이 찡해져왔다.애를 둘씩이나 낳았어도 부모 마음 이해하려면 아직 멀었나보 다.
강민욱 경남진해시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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