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용천역 폭발 참사] 구호품 바닷길 전달 고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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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개성 자남산 여관에 나온 북측 최성익 내각참사는 부드럽게 웃는 얼굴로 남측 대표단을 맞았다. 1984년 9월 북한이 남한에 수재 구호물자를 제공하기 위해 열렸던 남북 구호회담 이후 20년 만에 남북이 입장을 바꿔 마주 앉은 자리였다. 崔단장은 문 앞까지 나와 홍재형 통일부 사회문화교류국장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러면서 "용천 사고에 남측이 동포애적인 지원 용의를 밝힌 데 사의를 표한다"고 했다.

이날 대표 접촉에서 북측은 용천 폭발 사고 수습에 필요한 물품 목록을 남측에 처음 제시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닷새 만이다. 북측 崔단장은 지붕에 쓸 철판과 염화비닐(비닐하우스용) 같은 복구 자재를 우선 요청했다. 시멘트는 84년 남한에 보낸 10만t의 절반만 요구했다. 정부 당국자는 "당초 우리 예상보다 적은 양으로 북측이 신중하게 지원을 요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측 수석대표인 洪국장은 의료진과 함께 복구에 참여할 기술인력의 파견을 제의했다. 그러나 崔단장은 "전 행정력을 동원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회담 관계자는 "남측이 긴급 의료구호와 생필품 제공에 무게를 둔 데 반해 북측은 시설 복구에 필요한 자재.장비의 지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북한 주민과 직접 접촉해 부담이 될 수 있는 '남조선 사람'은 받지 않고 물자만 수용하겠다는 얘기다.

북측은 북송 경로와 관련해 육로.항공로는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회담 관계자는 "남한 수해 때 북측이 피해 가구를 직접 돌며 구호물자를 전달하겠다고 해 우리가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판문점에서 물품을 넘겨받은 전례가 있다"고 했다. "입장을 바꿔놓고 보면 북측에 육로 개방이나 현지 방문을 마냥 강요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도 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자재.장비 지원이 본격화하면 북측이 육로를 열어줄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자재.장비 지원의 경우 북측이 초기에는 남포항으로만 받아들이다가 물자 조달에 차질을 빚자 결국 휴전선을 가로지르는 육로를 연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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