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기행>"영재 어린이,그 신화와 실재" 엘렌 위너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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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한국이 낳은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중국계 미국 첼리스트 요요마,일본계 바이올리니스트 미도리….이런 뛰어난 예술가들의 활약상을 접할 때마다 우리 학부모들은 은근히 자기 자식한테도 그런 재능을 기대하게 된다.영재교육이니,조기 교육이 니 떠들썩한것도 그런 「환상」이 작용한 때문이기도 하다.
주로 성공한 영재들의 활약상을 접하다보니 그렇게 부럽게 비칠뿐이지 실상을 보면 여러가지 사정으로 재능을 제대로 꽃 피우지도 못하고 영락하는 영재들이 수두룩하다.
미국 보스턴 칼리지의 심리학 교수로 주로 아동심리를 연구하고있는 엘렌 위너가 쓴 『영재 어린이,그 신화와 실재』(Gifted Children:Myths and Realities.Basic Books刊)는 조기교육에 지나치게 열■ 쏟는 우리 학부모들에게도 많은 교훈을 던진다.영재를 둘러싼 신화를 벗기고 아울러 자녀가 정말로 영재적인 재능을 지녔는지 파악하는 요령을들려주고 있다.우선 영재에 대한 위너 교수의 정의를 보면 많은학부모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하다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지능지수가 1백25내지 1백30이면 대충 영재 또는 수재로 통한다.
그러나 위너 교수의 정의는 자못 구체적이다.지능지수보다는 다음의 세가지 특성을 모두 갖춰야 영재로 불린다.성격형성과 지식섭취의 정도가 특히 빠르고,언어.산수.음악.미술중 어느 한 분야를 어릴 적부터 마스터하기 시작하고,관심분야에 대한 열성이 지극히 강해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너 교수에 따르면 이같은 특성을 동시에 갖춘 어린이는 넉넉하게 잡아야 어린이 1만명당 1명꼴이다.굳이 지능지수로 따진다면 1백80에 가깝다.
영재에 대한 그릇된 신화는 아홉가지로 꼽힌다.영재는 모든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한다거나,미술이나 음악에 재능이 뛰어난 어린이들은 지능지수까지 탁월하다는 통설이 대표적인 신화다.또 영재는 조기에 부모나 선생들의 집중적인 지도로 만들어 진다든가,영재 어린이들은 적응력이 뛰어나고 인기가 높으며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것도 현실과는 크게 다르다.영재 어린이가 창의력이 탁월한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신화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어릴 적의 영재가 성인까지 연결되는 경우는 퍽 드물다.이 책에 인용된 사례를 보면 영재 성향이 오히려 성장에 부담을 주는경우가 많다.일찍부터 그림에 두각을 나타냈던 이튼이라는 학생은20대에 접어들면서 그림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고 있다.또 20,30년대 미국에서 떠들썩했던 음악 「신동」 70여명중에서지금까지 솔리스트로 활동중인 사람은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과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 등 6명 뿐이다.「성공률」이 10%에도 못미치는 셈이다.아무리 그렇더라도 부모로서는 자녀의 영재적 재능을 정확히 읽어낼줄 알아야 한다.
영재 어린이들은 만 5세 이전부터 집중력과 인식능력이 뛰어나다.일찍부터 부모를 알아보는 것도 그런 능력의 하나다.또 갓난아기일 때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몇개월 앞서 기어다니고 앉거나걸으며 한가지 장난감에 쉽게 싫증을 내는 경향 이 강하다.이런어린이는 언어 습득능력도 아주 빨라 몇마디 배우는가 싶으면 금방 긴 말까지 터득하고 어휘력도 풍부해진다.숫자에 특히 관심이높다. 이 책에 그려지는 영재 아이들의 모습은 「건전한」 어린이상과는 거리가 멀다.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에 부모가 자칫 과도하게 간섭하면 오히려 수준이 뒤떨어지거나재능을 지닌 분야에 관심을 잃고 만다.언어 능력에 비 해 글씨가 대부분 형편없다.손놀림이 사고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영재 어린이는 그들의 사회에서도 외톨이로 지낸다.혼자지내는 것을 즐겨서도 그렇긴 하지만 자신의 관심분야를 공유할 친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따라서 나이 가 자기보다 많은 어린이들에 끼어 노는 경우가 많다.또 소음이나 고통.욕구불만 등에 대단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은 호기심이 높아 만족한 결과를 얻을 때까지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또 대부분 체력이 좋아 한가지 일에 집중도가 높으며 수면량도 적은 편이다.
이런 영재들의 특성을 무시하고 부모가 과도하게 간섭하거나 자식사랑보다 성적을 앞세우다 영재 어린이들을 망치는 케이스가 많았다.부모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녀의 재능을 이용한다든지,자녀의 자율 능력을 거부하거나 자녀들과 정서 적 교감을 허용하지 않는 일은 절대 금물이다.영재 아이를 성공적으로 거둔가족의 분위기는 어떤가.분위기가 자녀 중심적이고,자녀에게 거는부모의 기대 또한 컸다.그만큼 부모들은 자녀들의 자율을 최대한보장하고 갖가지 배려를 아끼지 않 았다.
위너 교수는 『탁월한 재능을 타고났더라도 창의적인 성인으로 성장하기는 극히 어렵다』며 『지체부자유자에 못지않는 세심한 관심으로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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