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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울리히 시크만 獨 주방가구 업체 '시매틱'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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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독일의 대표적인 주방가구업체인 시매틱(SieMatic)은 창업 이래 70여년 동안 가족이 직접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회사를 이끌고 있는 울리히 시크만(37) 대표는 창업주의 3세다. 또 이 회사는 법인(法人)이 아니다. 당연히 상장회사도 아니다. 우리식으로 이야기하면 사(私)기업이다.

시크만 대표는 대표이사가 아니라 말 그대로 최고경영자(CEO)인 셈이다. 개인 업체로 남아 있는 배경이 궁금했다. 이와 관련한 질문이 길어졌다. 그러자 그는 "약속된 시간(1시간30분)이 지났다"며 "내일 만날 수 없느냐"고 양해를 구했다. 결국 국제 가구박람회가 개최 중인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그를 두번 인터뷰했다.

시크만 대표는 두번째 만난 자리에서 "주요 바이어와 대규모 수출계약을 하는 자리여서 인터뷰 시간을 늘리지 못해 미안했다"며 "사업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비즈니스(장사)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75년 된 기업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는.

"가족 돈으로만 회사를 키우는 것이 우리집의 전통이다. 기업을 공개하면 자금을 많이 끌어들일 수 있고 때에 따라선 회사를 몇배 더 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능력에 맞게 회사를 운영한다."

-개인업체로서의 한계는 없는가. 세금 문제 등 제약 요소도 적지 않을 것 같다.

"독일에선 오래전부터 개인 기업이 뿌리를 내렸다. 우리보다 덩치가 훨씬 큰 업체도 많다. 가전업체인 '밀레'도 우리와 같은 개인 기업이다. 대부분 재무구조가 탄탄하기 때문에 독일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한다. 그래서 세금을 내는 데 특별히 차별을 받지 않는다. 은행거래에도 아무런 제약이 없다. 개인 기업이라고 해서 불이익을 받는 것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가족끼리 몇대에 걸쳐 운영하는 기업이 많다."

-회사 매출은 어느 정도인가.

"2억8000만유로(약 4000억원) 정도 된다. 그러나 개인 기업은 정확한 매출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독일의 관행이다. 물론 경영실적은 세무당국이나 금융 관련 부처에 투명하게 보고한다. 외부에 공개하지 않을 뿐이다."

-회사의 대표는 어떤 방식으로 뽑나.

"아버지가 가족회의를 열어 결정한다. 회사 재산을 나눠 갖고 있는 부모님, 형, 누이 등 다섯명이 모이면 그게 '이사회'다. 그러나 아버지 독단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능력이 없으면 가족이라고 해도 언제든지 회사에서 물러나야 한다. 가족 중에서 경영능력이 있는 사람이 대표가 될 자격이 있다. 돈을 더 투자할 때도 가족이 모여 투자액을 배분한다."

-시매틱은 세계 고급 주방가구 시장에서 2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 원동력은 뭔가.

"우리는 생산라인을 모두 자동화했다. 부품마다 바코드가 붙어 있다. 부품들이 생산라인을 알아서 돌아다니며 조립된다. 그만큼 생산제품이 균일하다. 또 전량 주문생산하기 때문에 재고가 없다. 독일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온라인 주문을 받는다. 주문서가 곧 작업지시서가 된다. 자동화 생산라인은 세계 최대 규모인데 거기서 일하는 인력은 200명에 불과하다. 또 우리 회사는 자체 열병합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여러 폐자재를 소각로에 태워 이를 공장을 돌리는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에너지 비용이 적게 들어 그만큼 원가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다."

-소재나 디자인 개발은 어떻게 하나.

"우리 회사는 세계 처음으로 파티컬보드(PB)를 개발했다. 1968년에 개발된 이 소재는 버려진 나무 등을 잘게 썬 뒤 뭉쳐 만든 것으로 지금은 세계 가구의 일반적인 소재가 됐다. 원목은 자칫하면 휘어지는 부작용이 있어 지금도 여러 제품에 PB소재를 사용하고 있다. 디자인은 회사내 디자인 종합센터가 있고 50여명이 거기서 일한다. 또 고급 제품일수록 도장을 손으로 한다. 자동으로 페인트 칠 하는 것은 사람 손만큼 정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제품을 우리는 '페인터 콜렉션'이란 이름으로 시장에 내놓고 있다."

-시매틱의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얻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우리 제품의 특징은 견고하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주방 서랍을 연 상태에서 가장자리에 80㎏의 하중을 올려도 견디는 서랍 시스템을 갖고 있다. 또 서랍마다 밀폐 고무를 붙여 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설계한다. 이런 기능성을 살린 설계가 소비자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를 맡은 지 꼭 10년이 됐다. 그간의 성과는 뭔가.

"매출은 크게 안 늘었지만 시장점유율은 올랐다. 아시아시장에서 약진했다. 특히 한국에서의 매출은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은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장의 하나다. 이에 따라 이르면 하반기께에 한국을 방문해 시장 진출전략을 다시 짤 예정이다. 9월에는 서울 강남에 500평 규모의 독자 전시장을 개설할 예정이다."

-유럽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은 얼마나 되나.

"우리의 자체 조사 결과 독일 내에서 20%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시장에서 경쟁업체인 '불탑'등과 다투고 있다. 그러나 세계시장에서는 우리가 앞서 있다고 확신한다."

-한국 소비자들의 특징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나.

"디자인에 대한 안목이 높아 신제품을 우선적으로 한국으로 보낸다. 그러나 한국시장을 겨냥한 디자인팀을 별도로 두지 않고 있다. 시장 특성에 맞게 필요하면 디자인도 아웃소싱하고 있다."

-노조가 있는데 노조의 활동은 어떤가.

"과거에 비해 힘이 떨어졌다. 노조는 일은 줄이고 임금을 높게 받으려고 하는데 그들 스스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회사 이익이 줄어들면 결국 근로자가 피해를 본다. 이에 따라 상급노조 단체의 영향력도 점차 줄어들었다. 창업 이래 한 두 차례 분규가 있었지만 최근 들어선 노사관계가 매우 좋다."

-인재 양성은 어떻게 하나.

"근무 시간은 물론 쉬는 날에도 필요하면 교육을 시킨다. 매년 테마를 정해 집중교육을 한다. 올 교육 주제는 애프터서비스(A/S) 개선이다. 품질과 관리교육을 통해 회사 간부의 역량을 키운다. 우수한 인력에겐 급여를 더 주기도 하고 해외연수 등과 같은 인센티브를 준다. 관리직과 생산직은 직급을 분리 운영하고 있지만 생산직이라 해서 승진에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도록 하고 있다."

밀라노(이탈리아)=고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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