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아름다워] 서울 한복판 춤의 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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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 서울에서는 춤의 난장(亂場)이 펼쳐지고 있다. 다양한 국적과 차별적 경향의 춤을 두어 달 남짓한 기간에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다.

예를 들어보자. 85세의 머스 커닝엄이 최근작을 공연했다. '전설의 무용가'란 수식어가 붙은 현대무용의 거장이다. 신체 언어의 표현력을 확대하고 장르 혼합을 추구한 포스트 모더니즘 무용의 선구자가 커닝엄이다.

비슷한 시기 클래식 발레의 지존인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이 한국을 찾았다. 무용의 보혁(保革) 대결이랄까, 지난 세기 세계 무용의 가장 혁신적인 모습(커닝엄)과 가장 보수적인 형태(볼쇼이)가 경쟁하듯 거의 동시에 선을 보인 셈이다.

이번 주말에는 유럽 현대 무용의 고수들이 맞붙는다. 독일 '탄츠테아터(Tanztheater.무용극)'의 계보를 잇는 자샤 발츠는 '육체'(LG아트센터)를, 지리 킬리안과 함께 유럽 모던발레의 두 축인 스페인 나초 두아토는 '멀티플리시티'(예술의전당)를 선보인다. 오는 5월 말과 6월 초에는 킬리안과 '신체 테크닉'의 주술사로 통하는 캐나다 에두아르 록(랄랄라 휴먼스텝스)의 무용이 대기하고 있다. '국제현대무용제(Modafe)'에서는 전위(前衛) 무용 잔치가 한창이다. 면면들이 눈이 부시게 현란해 언제 무용 강국이 됐나 싶을 정도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할까. 프리젠터(수입상)들이 때를 잘 못 맞춘 일시적인 우연인가, 아니면 한국 무용 시장이 세계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증거인가. 여러 진단 가운데 필자는 우선 신체 언어에 우리 관객들이 익숙해지고 있음을 꼽는다. 관객 대부분이 대학.고교 관련학과 선생과 학생들이라지만, 무용 자체의 매력과 흡입력이 없다면 이런 붐은 조성될 수 없다.

그러나 이 변화의 뒤안길에서 왜 허한 느낌이 드는 걸까. 이유는 우리 무용가(안무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다. '직업 무용가' 말이다. 비록 극소수나마 존재하는 직업 무용가들이 아무리 의미 있는 난장을 펼쳐도 관객은 관심권 밖에서 서성이고 있다.

이게 '외화내빈'으로 치닫는 지금 한국 무용계의 실상이다. 만날 대학교육과 연계된 '유사(類似) 무용가'들이 이판사판이라고 하는 세상에서, 춤으로 먹고 살겠다는 직업 무용가들이 웅비할 기회는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다. 급속도로 '남의 입맛'에 탐닉해가는 무용계를 보면서, 필사적인 직업 무용가의 육성만이 한국 무용을 혁신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정재왈 공연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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