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포퓰리즘과 부패가 빚은 태국 비상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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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민주적 절차를 통해 집권한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세력과 이에 반대하는 세력이 맞붙어 충돌을 빚을 경우 그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를 태국 사태는 보여주고 있다. 어제 수도 방콕에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사막 순다라벳 총리가 이끄는 현 정부의 전면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대가 정부 청사를 점거한 지 8일 만이다.

표면상 태국 사태는 민주주의 수호를 둘러싼 민-민 충돌로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태국 사회의 극심한 계층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입헌군주제 국가인 태국은 도시 빈민과 농민을 기반으로 한 반(反)체제 세력과 방콕의 중산층과 왕정 지지자가 중심이 된 세력으로 확연하게 양분돼 있다.

포퓰리즘적 접근에 따른 빈민과 농민층의 압도적 지지로 2001년 집권한 탁신 친나왓 전 총리는 집권 후 국가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했고, 국민 전체보다 지지층을 배려하는 인기영합적 정치를 했다. 결국 그는 권력 남용과 비리 혐의 속에 2006년 태국 헌정 76년 역사상 17번째 군부 쿠데타로 실각, 해외로 달아나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지난해 말 총선에서 친탁신계 신당인 국민의 힘(PPP)이 승리하자 고무된 탁신은 올 2월 재판의 위험을 무릅쓰고 귀국했다.

예상대로 탁신에 반대하는 세력은 대대적인 시위에 들어갔다. 재판 도중 탁신 부부가 지난달 영국으로 다시 달아나 망명을 신청하자 시위는 더욱 격화돼 반정부 시위대와 친정부 시위대가 유혈 충돌을 빚는 사태까지 간 것이다.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중산층 중심의 시민단체인 국민민주주의연대(PAD)는 1인 1표에 기초한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태국 실정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이 포퓰리즘에 기반하여 정권을 잡을 경우 결국 희생되는 것은 민주주의다. 이것이 태국 사태가 주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