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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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옛 포도청 건너편은 초등교.이 학교 운동장 한구석에 동헌(東軒)이 있다.조선조 후기에 지어진 관청건물이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도 여기서 현감(縣監) 집무를 보았을까.「풍락헌(豊樂軒)」이라는 현판이 아리영의 눈을 끌었다.
단원이 쓴 「담락재(湛樂齋)」란 글씨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마흔두살 때인 1786년,안동 근처 마을 안기의 찰방 벼슬을마치면서 가까운 골 풍산의 한 집에 들러 써주었다는 현판.힘차고도 단아한 글씨다.『시경(詩經)』에 나오는 「화락이담(和樂而湛)」의 준말이 「담락(湛樂)」이다.화락함이 끝 이 없음을 뜻한다. 단원은 「락(樂)」자가 든 글귀를 특별히 좋아한 것같다. …동노수빈낙유여(東老雖貧樂有餘.동쪽 노인 가난해도 여유있다즐거워하네…) 김홍도 특별전에서 본 글귀다.흐를듯 아름다운 그붓놀림이 아리영을 한숨 짓게 했었다.그림만이 아니라 글씨도 명품이었다.
이런 천재가 무슨 큰 죄를 지었길래 그리도 비참한 말년을 보내야 했을까.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1794년 5월부터 1795년 1월까지 일본의 에도(江戶)에별안간 나타나 1백40여점의 놀라운 그림들을 그리다 갑작스레 자취를 감춰버린 화가 도슈사이 샤라쿠(東洲齋寫樂)란 정말 김홍도인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아리영의 마음 속에서 점차 뚜렷한 윤곽을 잡아가고 있었다.이자벨의 「확신」을 뒤쫓아가는 셈이다.
도슈사이 샤라쿠,즉 東洲齋寫樂은 본명이 아니라 아호(雅號)다. -동쪽 섬의 집에서 그림 그리기를 즐기다.
만약 김홍도가 자신의 실체(實體)를 감추고 약 열달 동안 일본서 몰래 그림을 그려 「돈 벌다」온 것이라면 능히 썼음직한 호가 아닌가.
샤라쿠가 일본에서 마지막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 바로 그해 1월,김홍도는 연풍 현감 벼슬을 삭탈당했고,이튿날 체포령이 내려졌으나 곧이어 정조(正祖)에 의해 특별 사면되었다.「아직까지 잡히지 않고 있는 김홍도 등 네명의 죄를 사면한다 」는 전교였다.그러니,그때 김홍도는 연풍에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만약 그가 연풍이나 그밖의 연고지에 있었다면 서슬이 퍼런 의금부 관리가 잡아들이지 않았을 리 없다.행여 국내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그리고 김홍도가 다시 서울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2월부터의 일이다.샤라쿠가 일본서 활약하던 열달 동안 김홍도는 단 한점의 그림도 그리지 않았다.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치가 아닌가. 안동 하회(河回)마을의 탈춤 공연을 보러가는 승합차 속에서 아버지는 샤라쿠의 수수께끼를 풀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며 서여사 등 일행에게 짓펜샤 잇쿠(十返舍一九)의 이야기책 삽화 설명을 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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