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대戰총아미사일>下.끝.對美미사일보장서 '멍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6공(共)정권 후반기에 접어든 90년 10월.
주한(駐韓) 미 대사관을 통해 2쪽짜리 문서 하나가 미 국무부로부터 외무부로 날아왔다.국방부가 「현무」로 불리는 사정거리1백80㎞의 「NHK2」 지대지 미사일 개발계획을 한창 추진하고 있던 때였다.그러나 관성항법장치등 일부 핵심 부품 도입이 미 정부에 의해 번번이 거부되는 바람에 개발계획 자체가 무산위기에 처해있는 상황이었다.
마침내 수출을 허가하는 조건으로 미 정부가 한국측에 제시한게바로 이 문서였다.『한국은 사정거리 1백80㎞,탄두중량 5백㎏이상의 「어떠한 로켓시스템」도 획득하거나 개발하지 않는다』는 것이 골자였다.
『상황변화에 따라 내용을 협의.조정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있기는 하지만 군사용은 물론 평화적 목적의 민간용 로켓개발까지모두 포기한다는 일종의 백지수표나 다름없는 것이었다.하지만 미사일 자체개발이라는 목전의 목표에 급급한 나머 지 정부는 깊이따질 겨를도 없이 외무부 담당과장을 시켜 문서에 서명했다.이른바 「대미(對美)미사일보장서」는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물론 당시로선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두고두고 이 각서가 우리우주산업 개발의 발목을 묶는 족 쇄가 되리라는 데 까지는 생각이 못미쳤던 것이다.
지난 93년 정부는 한반도상공 오존층 측정을 위해 두발의 과학관측 로켓을 발사했다.고도 75㎞에 불과한 가장 초보적 수준의 1단 로켓이었다.그러나 개발과정에서 텔레메트리로 불리는 원격측정장치를 구하지 못해 몹시 애를 먹었다.MTC R 통제품목이므로 미 정부의 수출허가가 나지않을 것이란 이유로 미 기업들이 난색을 표명한 것이다.결국 미국내 모대학 부설연구소로부터 구하긴 했지만 정해진 용도에만 사용한다는 정부보증각서를 미 정부에 써주고 난 뒤였다.
민간차원의 로켓개발에 필요한 부품을 구입할 때마다 미 정부는똑같은 절차를 요구하고 있다.우선 「논 페이퍼(non paper)」라는 미 국무부의 비공식 외교문서가 주한 미 대사관을 통해 외무부에 전달된다.거기서 항상 빠지지 않■ 조항이 미사일보장서 준수의무 확인이다.확인을 거부하면 구매절차는 그것으로 끝이다.필요한 부품을 들여오자니 울며 겨자먹기로 매번 확인해줄 수밖에 없다.약자의 설움인 셈이다.
***弱者설움 톡톡히 그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다.MTCR에 의한 정부보증각서 제출절차가 기다리고 있다.구매한 부품을 대량파괴무기 생산에 사용하지 않고,당초 정해진 용도이외의 목적에 전용하지 않으며 재수출하지 않는다는 것을 정부가 보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장사찰 과정을 거쳐야 한다.구매를 원하는 부품이 과연 제시된 용도에 맞는지 직접 와 확인하는 절차다.개발중인 로켓의 사정거리가 1백80㎞ 이내에 들어가는지도 이 과정에서 확인된다.이런 절차가 모두 끝나야 미 국무부는 수출허가를 내준다.같은 품목이라도 구입할 때마다 똑같은 절차를 되풀이해야 한다. 미국이 MTCR 규제리스트에 올라있는 핵심품목에 대해 이정도로 까다로운 수출통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은 물론 범세계적 비확산체제 유지를 위해서다.로켓기술은 곧바로 미사일기술로 전용될 수 있기 때문에 민간용 로켓개발에 대해서도 엄격 한 규제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개도국의 독자적 우주기술개발을 억제함으로써 우주산업 분야에서의 미국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려는 경제적동기도 작용하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은 아직 우주개발 분야의 후진국이다.자체개발한 발사체를 통해 위성을 발사한다는 장기구상은 있지만 빨라야 2010년 이후의 일로 예상되고 있다.그런데도 미국은 오래전부터 「논 페이퍼」의 한 조항으로 우주발사체(SLV)를 갖지않을 것을 한국에요구해왔다.기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미리 뛰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는 얘기다.
한국의 독자적 기술개발을 원천봉쇄함으로써 우주분야에서 미국에대한 기술적 종속상태를 유지시키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것이다. 『MTCR는 대량파괴무기 운반체제에 기여하지 않는 한각국의 우주개발계획을 방해하기 위해 고안된 체제는 아니다』고 MTCR는 가이드라인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이를 근거로 정부는 미국측에 평화적 목적의 독자적 우주개발 당위성을 납 득시켜야 한다.
따라서 현무 미사일개발 필요성 때문에 써준 보장서는 NHK2사업에 국한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이와함께 비확산 문제에 관한 우리의 투명성과 확고한의지를 보장하는 방법으로 우리가 MTCR에 가입 하더라도 사정거리 3백㎞를 초과하는 군사목적 미사일의 수출은 물론 개발.보유까지 않겠다는 것을 별도로 약속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예산확보 급선무 우주산업은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다.그래서 우주산업은 항상 통치권자의 결단및 비전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각국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정부는 내년 발사를 목표로 2단형 고체로켓을 개발중이지만 이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은 고작 연간 15억원으로 22명의 전문인력이 이 일에 매달리고 있을 뿐이다.그나마 연구개발보다 예산확보에 오히려 더 시간을 써야하는 실정이다.
일본은 고도 3만6천㎞의 지구정지궤도 진입이 가능한 우주발사체인 H2미사일을 개발,우주산업분야에서 이미 갈 데까지 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미국 감시를 뚫고 이 정도까지 갈 수 있게된 가장 큰 이유는 군사적 목적의 미사일에는 손대 지 않는다는확고한 신뢰를 미국에 심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 눈치가 보여 국가예산에 공식적으로 반영하기 어려운 막대한 재원은 정치자금을 전용해 마련했다는 항설(巷說)까지 있다.우주개발을 꿈꾸는 우리로선 타산지석(他山之石)이 아닐 수 없다.
배명복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