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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맛] ‘정강원’으로 거듭난 대통령들 단골집 ‘동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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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을 직접 비벼 맛보는 홍콩 사람들.

“비빈바압 마시써요~.” 지난 21일 오후 1시쯤. 강원도 깊은 산골에 외국인들의 어눌한 한국말이 울려 퍼졌다.

여기는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백옥포리에 있는 한국 전통음식 문화 체험관 ‘정강원’. 서울에서 자동차로 2시간반이 걸리는 이곳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 태국·말레이시아 등 외국인 3000명이 방문한 데 이어 올해 벌써 5000명을 넘어섰단다. 비빔밥이 맛있다고 외친 사람들 역시 가족 단위 홍콩인 단체 관광객들이다.

“목기에 담긴 하얀 밥. 그 위에 놓인 푸른 채소와 희고 노란 지단, 여기에 빨간 고추장까지 어우러진 모습이 꽃 같네요. 기름이 많이 들어가 느끼한 중국 볶음밥과 달리 비빔밥의 맛은 산뜻해요.” 홍콩에서 강원도로 남편·아이와 함께 물놀이를 왔다는 윙만루이(36) 주부의 말이다. 그녀는 비빔밥 한 그릇을 후딱 비우고, 다시 한 그릇을 비볐다. 이곳을 찾는 외국인들은 대형 워터파크나 스키장이 없는 태국·홍콩·마카오 등 동남아에서 온 사람들이다. 정강원은 3만여㎡의 부지에 전통 한옥으로 곱게 지은 건축물에 식문화 전시실·한식 실습실 등을 갖추고 있다. 항아리 500여 개가 진열된 전통 장독대와 절임 음식을 보관하는 석빙고까지 갖춰 한국 전통 음식과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강원도를 찾은 외국인들이 가까운 곳에서 현지인의 전통 생활상을 체험하기에 딱 알맞은 곳이다.


한식 체험관의 중심엔 한식 전문가 조정강(71)씨가 있다. 조씨는 한때 서울 홍대 앞의 대통령 단골집으로 유명하던 한정식집 ‘동촌(東村)’의 옛 주인이다. 조씨는 음식점을 뜻하지 않게 시작했다. 막내가 돌을 지나자마자 남편이 쓰러져 일곱 아이들의 생계를 위한 막바지 선택이었단다. “친정 할머니에게 배운 솜씨대로 만든 음식일 뿐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손님들이 줄을 잇더니 TV에서 뵙던 높은 분들도 오시더라고요.” 최규하·전두환·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이 찾아오고, 중앙아산병원·세브란스병원으로 음식점이 늘어가면서 많은 돈을 쥘 수 있었단다. 잘나가던 사업을 접고 강원도로 내려온 건 전통 한식에 대한 강한 애착 때문. “우리가 한식을 너무 천시해요.” 그가 자주 하는 말이다. 1만원짜리 빈대떡은 비싸다고 아우성치면서 같은 값의 피자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세태를 꾸짖는다. 대한민국 특급호텔에 변변한 한식당 하나 없는 것도 한식 천시 풍조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뿌리의 고귀함도 모르고 어찌 세계화·글로벌화를 외치느냐고 되묻기도 한다.

“그렇게 천대 받는 한식 메뉴로 일곱 아이 모두 대학까지 가르쳤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죠. 나머지 번 돈은 덤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것을 다시 사회에 되돌릴 방도를 찾던 중 떠올린 게 한식 체험 교육장이었단다.

“음식은 어머니의 손맛이라고 하잖아요. 손맛은 곧 가족을 위한 정성스러운 마음이고요. 그 손맛은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어머니에서 다시 며느리와 딸로 이어져왔는데….” 조씨는 요즘 어머니들이 맞벌이 직업 전선에 나서면서 점점 사라져가는 손맛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그래서 1999년 30억원의 사재를 털어 평창 백옥포리에 땅을 마련해 주춧돌을 쌓기 시작했단다. 모든 일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6년여 동안 공사 인부들 밥까지 날라가며 지은 한식 체험관이 문 연 지 8개월 만에 홍수에 쓸려 나갔다. 넋 놓고 지내기를 보름,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다고 생각해 다시 팔을 걷어붙였다. 요즘 뜻하지 않던 외국인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조씨는 시야를 한국에서 세계로 넓히고 있다.

“정강원은 한식 교육시설은 물론 우리 전통 한옥으로 꾸민 숙소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한식에 관심 있는 젊은 외국인들을 불러 모아 기숙사형 한식 전문 학교로 거듭나려고 합니다.”

<평창> 유지상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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