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여 명이 한글 읽기 깨우쳤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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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먹고 사느라 교육이 사치였던 시절, 배움의 기회를 양보하는 이는 늘 여성이었다. 그 사실이 안타까워 꼭 30년 전 1978년 8월27일, 서울 봉천동 사글셋방에 작은 기관이 문을 열었다. 한국여성생활연구원의 작은 시작이었다. 문해(文解:문자 해독) 교육으로 30년간 3만여 명의 ‘글 못 읽는 설움’을 풀어준 ‘교육기관’이다.

일주일 당겨 열린 30주년 행사에서 연구원의 정찬남(61·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사진) 원장을 만났다.

“깜짝 놀라서 ‘어머! 글 모르고 어떻게 살았어요…’ 물어봤다니까요.”

요즘도 글 모르는 사람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 원장은 “처음엔 나도 반신반의 했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회가 모를 뿐이에요. 읽고 쓰지 못하는 인구가 240만 명이나 돼요. 수명이 늘면서 식민시대에 교육받지 못하고, 보릿고개 넘으며 배우지 못한 분들이 지금도 건강하잖아요. 나이에 관계 없이 글 모르면 답답한 건 매한가지예요. ”

정 원장이 ‘국일학교’라는 직장여성을 대상으로 한 중등교육 야학을 시작한 것이 79년이었다. 이듬해 고등학교 과정이 생겼고 주부대학도 문을 열었다. 그즈음 미처 몰랐던 하소연을 들었다. 한글을 읽지 못하는 주부들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국일 문해학교’가 열렸고 낮에는 주부들로, 밤에는 직장인들로 교실은 북적댔다. 91년엔 교재출판을 위한 출판사를 세웠고, 2001년엔 한국문해교육센터를 설립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 교육부 선정 평생학습대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나라가 의무교육을 보장해주는데도 문해교육이 필요할까?

“과거엔 문맹퇴치만 생각했어요. 이름 석 자 써도 글을 안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문해의 기준은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중등 수준의 이해력은 갖춰야 문해능력이 있다고 할 수 있죠.”

이날 연구원의 행사는 조촐했다. 문해교육 과정을 거쳐간 이들이 자랑거리가 아니라며 드러내길 꺼려서다. 하지만, 행사장에 나타나지 않았어도 이들이 누리는 세상과 소통하는 기쁨을 정 원장은 잘 안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공부 마치신 분도 계시고, 자식에게도 자존심 있는 엄마가 되고…이런 분들을 보면 단 한 분이라도 더 글 못 읽는 답답함에서 벗어나게 해 드려야죠. 교육받는 환경에 둘러싸인 분들도 문해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앞으로 30년을 또 해나가야죠.”

글·사진=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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