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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취운정에 경성 첫 도서관…유길준 ‘서유견문’ 낳았다
━ [근대 문화의 기록장 ‘종로 모던’] 3·1운동 이후 도서관 설립 확산 집옥재와 팔우정. 왼쪽에는 서고인 팔우정, 오른쪽에는 이층 복도로 연결된 경복궁 집옥재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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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학교, ‘대학생 튜터링 사업’운영
서울시립대학교(총장 서순탁)가 한국장학재단이 주관하는 ‘2022년도 교‧사대생 등 대학생 튜터링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 〈교‧사대생 등 대학생 튜터링 사업〉은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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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검정고시 재수생, 57세 뇌병변 장애인 박윤복씨의 꿈
배너를 클릭하면 '복지온돌방 36.5'를 더 보실 수 있습니다. “저도 아직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그보다 기쁠 수가 없었어요.” 중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던 순간을 떠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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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창부수 … 아내는 학생회장, 남편은 부회장
김탄진(오른쪽)씨는 돈이 생기면 아내 장애경씨의 가방이나 머리핀을 먼저 산다고 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그냥 배우는 게 재미있어요. 학교를 못 다녔으니까요. 힘들 때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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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생활정보
문화&공연 어린이뮤지컬-꼬마버스 ‘타요’ 일시 7월 19일(토) 오전 11시, 오후 2시·4시30분 7월 20일(일) 오전 11시, 오후 2시 장소 천안예술의전당 대공연장 문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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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야학 교실 풍경 … 한낮 무더위보다 뜨거운 한밤 배움의 열정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야학(夜學). 30대 이전 세대에게는 다소 낯선 단어일 겁니다. 사전적 의미는 민간 단체나 학생 등이 근로청소년 또는 정규 교육을 받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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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my LIFE] 이상백 천웅 슈우스프 이사장
이상백 천웅 슈우스프 이사장은 30년째 자비를 들여 야학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 그가 야학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제도적으로 해결해야할 숙제란다. [조영회 기자]“야학이요?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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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여 명이 한글 읽기 깨우쳤어요”
먹고 사느라 교육이 사치였던 시절, 배움의 기회를 양보하는 이는 늘 여성이었다. 그 사실이 안타까워 꼭 30년 전 1978년 8월27일, 서울 봉천동 사글셋방에 작은 기관이 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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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夜學등불' 끝내 숨져
30여년 인생을 송두리째 불우청소년 교육에 바친 야학 '신일나눔학교'김창묵(53.사진)교장이 11일 오전 끝내 숨졌다. 金교장은 지난 2월초에 암이 재발, 한달이라는 시한부판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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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모두사랑 장애인 야학' 학생들 이야기
대전 '모두사랑 장애인 야간학교' 재학생은 거의 모두 신체적. 정신적으로 조금 불편하다. 그래서일까. 교실 밖 세상에선 아무래도 조금 움츠러든다.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닫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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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 NGO] 새로운 100년을 향해 다시 뛴다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대부 격인 서울 YMCA(이사장 박우승)가 28일로 창립 1백주년을 맞았다. 국내 민간단체로는 처음으로 1백살을 맞은 서울 YMCA의 역사는 곧 한국 시민운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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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지 못한 설움 안당해보면 몰라요'
"육칠은 사십이, 육팔은 사십팔, 육구 오십사. 칠일은 칠…." 칠판에 써놓은 'ㅍ''ㅎ'등 한글 자음을 열심히 공책에 베끼는 한글기초반 학생들도 대부분 노인들이다. 평생을 삭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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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민중교육』 필화사건
『「군사부일체」 또는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 않는다」는 말처럼 우리 사회는 예부터 「선생님」을 존경하고 추앙해왔습니다. 피고인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이미 교사직에서 파면된 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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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출신이유 교원임용서 제외
서울시교육위원회가 신규임용자로 배정된 교원을 「운동권 출신」이라는 이유로 임용대상에서 제외, 말썽을 빚고있다. 서울시교위는 9월의 신규교원임용과정에서 서울대사대 8월 졸업 장용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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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이 주도하는 폭력혁명"주장|검찰이 밝힌 삼민투의 기본성격·조직·행동양상
운동권학생들의「선도투쟁조직」인 삼민투위는 현재 전국 34개대학에 조직되어 있으며 대학별로 명칭이나 조직형태는 다르더라도 「민족통일·민중해방·민주쟁취」라는 소위 「삼민이념구현」을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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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민투위 수사 중간결과 발표 (전문)
○1984년3월 학원자율화 조치이후 학원가에 불법집회 및 시위와 농성, 공공기관점거와 파괴등 폭력사태가 급증하고 학원내에서 좌경 불온유인물이 범람하는 등 작금의 학원사태는 질·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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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36년(45)|징용 노무자의 저항
태평양전쟁이 일어나던 40년대 국내의 항일운동은 그 명맥이 끊어져있었다. 국내 지도층은 대세에 밀려 소극적 친일에 안주하고 있었다. 그런 최악의 상태에서 민중의 항일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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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반세기에 펼치는 특집 시리즈(6)
3·1운동은 우리 민족이 유사이래 처음으로 간악한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고 그 압제에 신음하다가 10년째 되는 해에 일으킨 거족적 독립운동이었다. 그런데 이 민족독립운동의 주동 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