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창부수 … 아내는 학생회장, 남편은 부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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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탄진(오른쪽)씨는 돈이 생기면 아내 장애경씨의 가방이나 머리핀을 먼저 산다고 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그냥 배우는 게 재미있어요. 학교를 못 다녔으니까요. 힘들 때도 있지만 남편이 의지가 많이 돼요”

중증장애인 장애경·김탄진 부부
동숭동‘노들’ 야학 8년째 함께 다녀

10년 전 장애인 시설에서 만나 인연
“공부 계속 해 재활센터 차리고 싶어”

18일 서울 동숭동 장애인야학 ‘노들’에서 만난 장애경(48·여)씨가 한 말이다. 초·중등과정 검정고시를 준비 중인 장씨는 뇌병변장애 1급의 중증장애인이다. 휠체어가 없으면 이동조차 힘들다. 일상 생활 전반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남편 김탄진(49)씨도 아내처럼 뇌병변장애 1급이다. 아내보다 앞서 검정고시로 고교 과정을 끝낸 공부 선배다. 김씨는 사이버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다. 부부는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으로 생활한다. 각각 3명씩 총 6명의 활동보조인이 시간과 요일을 나눠 이들 부부를 돕는다. 그만큼 이들의 환경은 열악하다. 하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 못지 않다. “배우는 데 있어서 장애는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게 장씨의 생각이다.

지난 3월 장씨는 노들의 학생회장, 김씨는 부회장으로 나란히 선출됐다. 장애인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1993년 설립된 노들에서 여성 학생회장이 탄생한 건 처음이다. 1년 동안 80여 명에 이르는 장애인 학생들이 무사히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부부의 임무다.

장씨는 “남편이 2년 전 학생회장을 했는데 옆에서 보니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도전했다”며 “지난해 출마했다가 떨어졌지만 올해는 ‘결석하지 않고 꾸준히 야학에 출석하면 6개월에 한 번씩 2만원짜리 상품권을 주겠다’는 공약이 통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상품권은 부부가 가끔 하는 외부 장애인 인권강의 등을 통해 모은 돈을 쪼개서 마련하기로 했다. 김씨 역시 “아내가 학생회장을 하고 싶다고 해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부회장을 맡기로 했다”며 거들었다. 김씨는 쌈짓돈이 생기면 아내의 손가방이나 머리핀을 제일 먼저 사준다고 했다.

둘은 10여 년 전 경기도 남양주의 한 장애인 시설에서 처음 만났다. 장애인 스포츠 중 하나인 ‘보치아(Boccia)’를 하면서 눈이 맞았다. 하지만 시설은 열악하고 갑갑했다. 외출도 쉽지 않았고, 먹고 자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2009년 김씨가 먼저 시설을 나와 노들과 인연을 맺었고, 장씨가 따라 나섰다. 장씨는 “말 그대로 남편이 보고 싶어 ‘야반도주’ 했다”고 말했다.

둘은 그해 결혼한 뒤 서울 노원구의 한 임대아파트에 살림을 차렸다. 부부는 장애 등급제와 부양 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주최 집회 등에도 활발히 참여한다.

부부의 꿈은 소박하다. 김씨는 “공부를 계속해서 나중에 나와 처지가 같은 장애인들을 위한 재활센터를 차리고 싶다”고 밝혔다. 장씨는 “학생회장으로서의 목표는 다음달 14일로 예정된 노들장애인야학 후원행사 ‘밥상이 나르샤’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남편이 아프지 않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오랫동안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글=채승기 기자 che@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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