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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역사] 50. 빛의 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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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국방부 주최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두고 온 산하’로 당선된 신봉승씨.

기억이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는구나. 나도 꽤 늙었나 보다.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난 지 반년쯤 지나서인가. 국방부 정훈장교로 있는 선우휘 대령이 찾아왔다. 시나리오를 현상 모집하는데 심사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시나리오 작가 이청기.영화감독 전창근씨와 같이 하는 것이란다. 상금이 300만환이라니 획기적이다.

내 눈에 쏙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젊은이들은 다 뭘 하고 있는가, 기백 있는 자가 없는가라고 중얼거리는데 '두고 온 산하'라는 것이 눈에 띄었다. '두고 온 산하'? 가슴이 뭉클해졌다. 단숨에 읽어 내려가니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심사에서 두 분이 다른 작품을 당선작으로 밀었다. 나는 '두고 온 산하'를 제시했다. 옥신각신 끝에 내가 이겼다. 필자를 물어보니 강원도 어느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신봉승씨라는 것이었다. 서울로 나온 그는 쑥쑥 자랐다. 라디오 드라마.텔레비전 사극.시나리오.시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무소불능의 작가가 됐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삼국사기 등에 통달했다. 어떻게 그 경지까지 공부할 수 있었을까. '사모곡'에서 출발해 '조선왕조 500년' 등 29년간 격조 높은 사극을 써왔다니 놀라운 일이다.

어느 날 그가 예술원 회원이 됐다는 얘기를 듣고 용케 뚫고 들어갔구나 싶었다. 당시 예술원은 시인.연극배우.영화감독은 예술인이고, 방송작가는 예술인이 아니라며 자존심을 드높였던 곳이다. 그런데 방송 작품으로 크게 알려진 신봉승을 모셨다? 시인이기도 하니까 그 쪽에서 문을 열어줬나? 거긴 뭐 이상한 풍토가 있다던데….

성북동 111번지. 우리집이다. 내 소유는 아니지만 상쾌했다. 대문 옆의 휘어진 소나무가 나를 지켜주는 것 같았다. 바로 그 곳에 어느 날 시커먼 지프가 와서 섰다. 키가 훤칠한 소령이 나타났다. 국방부에서 왔다고 했다.

"아시다시피 세계 각국에서 우리 혁명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한국의 육군을 알고 싶답니다. 30분짜리 영화 하나 써주십시오."

그러니까 이것은 5.16 직후 이야기다.

"나는 한국 육군을 잘 모르는데…."

"제가 최일선에서 최후방까지 모시고 다니겠습니다."

맨 먼저 간 곳이 38선 인근 6군단이었다. 김웅수 장군이 군단장, 한신 장군이 사단장이었던가. 군단가를 지어 달라기에 써준 기억이 난다. 육군사관학교에도 갔다. 가슴에 훈장을 가득 단 교장을 봤다. 내가 만약 일본 학병에서 돌아와 당신과 같이 영어학교(고급장교 양성 과정)에 들어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당신처럼 됐을지도 모른다. 또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부산 보급창으로 갔다. 박정희 장군이 5.16 직전까지 사령관으로 있었다는 곳이다. 문경새재 험준한 산 속에서 대구사범을 나오자마자 선생노릇을 했다는 박정희 장군! 시찰을 마치고 돌아와 써준 것은 '마치 오브 스트렝스(힘의 행진)'였다. 한국을 사랑하는 애정을 담지 않을 수 없었다.

한운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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