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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맹모부대를 아시나요

중앙일보

입력

어느덧 학원가의 대명사가 된 대치동. 이곳에 학원만큼 많은 것이 식당·세탁소·수선집이다. 아이 공부를 위해 엄마들의 시간절약은 필수인가보다.

오후 5시 정도가 되면 어김없이 주차장마다 차들이 꽉 들어차기 시작한다. 엄마와 아이가 학원 주변에서 저녁식사를 한 뒤 아이 혼자 학원을 향해 떠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대치동이 다시 분주해지는 것은 자정 무렵. 10대들이 가방을 메고 학원차를 타러 가거나 즐비하게 줄지어 서있는 학부모의 차로 걸음을 옮긴다. 엄마들은 물론 퇴근한 아빠들이 데리러 오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아이들을 태운 차들이 저마다 유유히 사라지면 학원 앞은 순식간에 빈다.

대치동의 집들은 공부하는 학생들로 새벽 2시가 넘어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어느 날은 24시간 영업하는 패스트푸드점을 아주 늦은 시간에 찾게 됐다가 깜짝 놀랐다. 많은 엄마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학원을 다니거나 그룹과외를 하는 학생들의 학부모들이 모여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란 사실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방학이면 외국에서 SAT나 iBT 등 모자라는 국어·영어·수학·과학을 보충하러 오는 역 유학생들로 학원 주변 오피스텔이나 대치동 원룸·투룸은 방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기도 한다. 다른 동네에서 날마다 운전을 해 아이들과 함께 오거나 오피스텔·원룸 등을 얻어 생활하는 엄마들은 아이가 수업 받는 동안 서로 정보를 나눈다. 퍽 진지해서 거의 회의를 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각자 모은 학원 상담 내용들이 브리핑되곤 한다. 잠은 언제 잘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러한 모습은 밤이든 새벽이든 상관없이 대치동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대치동에서는 엄마들이 아이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고 많은 결정권을 가지고 있어, 엄마의 인맥에 따라 그룹 과외가 성행한다. 선생님을 따라 보통은 4명, 유명한 선생님은 50명 까지도 팀을 짜서 개인당 돌아가는 과외비를 덜 부담스럽게 하기도 한다.

특히 공부를 잘한다고 소문난 아이들 중심으로 그룹과외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동네에서는 팀 짜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대치동에서는 수월하다고들 이야기하곤 한다.

서울 내 타 지역이나 부산·광주·제주, 심지어 해외에서까지 학원을 다니기 위해서 대치동으로 모여들기 때문이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엄마들의 노고와 정보력이 대단하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필자 역시 이곳 ‘교육 전쟁터’ 한가운데서 살아가다 보니 이런 극성에 혀를 찰 수만은 없다. 오히려 그들의 노력에 감탄하며 한 수 배울 때가 많다. 아이 교육을 위해 끊임없이 계발하고 발로 뛰며 맹모삼천지교를 보여주는 엄마들. 시청 부근이나 테헤란로에 넥타이부대가 있다면 대치동에는 맹모부대가 있다!

-안수영<독자·39·강남구 삼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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