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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과 4 사이 … 꽃피운 ‘잡초’ 김경문 야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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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경문 감독(右)이 22일 베이징 올림픽 야구 준결승전에서 일본을 꺾은 뒤 호시노 일본 감독과 악수하고 있다. ‘행운’과 ‘죽음’ 사이를 오간다는 김 감독의 등번호 ‘74번’과 행운의 7이 두 번 겹친 호시노 감독의 배번 ‘77번’이 대조를 이룬다. [베이징=연합뉴스]

베이징 올림픽에서 김경문(50) 대표팀 감독은 호시노 센이치(61) 일본 대표팀 감독과 오더를 교환할 때 모자를 벗고 깍듯이 인사했다. 16일 예선전에서도, 22일 준결승전에서도 그랬다.

호시노 감독은 대회 전부터 “한국에 경계할 만한 선수가 없다. 위장 오더나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김경문 감독을 애써 무시했다. 지난해 12월 아시아 예선전에서 김 감독이 관례를 모르고 이중 오더를 제출했던 허물을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당시 승리를 거둔 호시노 감독은 최소한의 아량도 베풀지 않았다. 김경문 감독은 감정을 가라앉혔다. 그 정도를 이겨내지 못할 그가 아니었다.

김 감독은 대표팀 유니폼에 의미 깊은 등번호 74번을 새겨 넣었다. 2004년 두산 감독에 오른 뒤부터 지금까지 그를 상징하는 숫자다. 야구를 하다 보면, 인생을 살다 보면 행운(7)도 있고 죽을 고비(4)도 있다는 의미다.

그는 흔히 잡초에 비유된다. 프로선수 10년간(1982~91년) 통산 타율 2할2푼, 6홈런에 그쳤다. 주목받는 코치도 아니었다. 김 감독은 “내가 남보다 나은 것은 어려움을 많이 겪어본 것밖에 없다. 그게 내 자산이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김 감독은 지난 4년간 두산을 세 차례나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2005년 고려대 후배인 선동열 삼성 감독에게, 2007년 OB(현 두산) 시절 스승인 김성근 SK 감독에게 우승 패권을 내줬다. 정상 문턱에서 번번이 주저 앉았던 그는 2인자였다.

김 감독은 지휘철학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연봉 2000만~3000만원의 젊은 선수들을 중용하며 세대교체를 이뤄냈다. 힘으로는 상대를 당해낼 수 없었기에 빠르고 영민한 선수들을 키워냈다. 번트로 안전하게 1점을 얻기보다는 위험을 안고 강공 작전을 폈다. 김 감독은 “난 잃을 게 없는 사람이다. 내 뜻대로 하고 실패하면 내가 책임을 지겠다”며 주위의 우려에 맞섰다. 그는 늘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살아간다고 했다.

베이징 올림픽 감독도 폼 나게 얻은 게 아니었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신화를 썼던 김인식 한화 감독이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고, 선동열 감독은 자리를 부담스러워했다. 이곳 저곳 구애를 하다 실패한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그제야 2인자를 찾았다. 김 감독은 “프로 감독이 된 것으로도 황송한데, 국가대표 감독이라니…”라며 곤혹스러워했다. 그리고 서로 미뤘던 ‘독이 든 성배’를 들었다.

태극마크를 달고도 여전히 고집스러웠다. 베테랑 대신 이종욱(두산)·이용규(KIA)·정근우(SK) 등 젊고 빠른 선수들을 대거 발탁했다. 역전패 직전까지 한기주(KIA)를 고집했고, 1할 타자 이승엽(요미우리)을 끝까지 믿었다.

한국은 9부작 드라마를 연출하며 우승을 이뤄냈다. 7과 4 사이를 오갔던 김 감독의 전략은 때론 위기를 겪기도 했다. 100점은 아니었지만 80점이기도, 120점이기도 했다. 김경문 감독은 이제 최고 자리에 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너무 행복해서 지금 야구를 그만둬도 후회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김경문 감독의 인사를 받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던 호시노 감독은 7이 두 번 겹친 등번호 77번을 달았다.

선수 시절 최고 투수로 활약하고 감독으로서도 실패를 몰랐던 그는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채 질주하다 잡초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금메달을 따겠다는, 한국은 안중에도 없다는 호시노 감독은 동메달도 따지 못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호시노 감독은 원로들과 미디어로부터 대표팀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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