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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 시시각각

비겁한 거리, 명품들의 행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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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여름도 9회 말이다. 열대야도 가고 올림픽도 끝나고 이명박 대통령의 6개월도 지나갔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조국을 흥분시키고 세계를 들었다 놓았다. 그들은 정체 모를 남미 심판과 세계의 마지막 장벽을 병살(倂殺)시켰다. 선수단은 조국으로 돌아오고 자메이카의 400m 계주 선수처럼 여름은 곧 가을에 바통을 넘길 것이다.

2008년 여름은 한국이 가야 할 길을 보여주었다. 13억 공룡의 거친 숨이 얼굴에 닿고, 담장 너머엔 수천만 헐벗은 동포가 있으며, 석유 불안에 가슴을 졸여야 하는 나라…그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을 그려주었다. 오랜 세월 가난한 한국은 핏발 선 눈으로 복싱 같은 격투기에서나 겨우 메달 몇 개를 주웠다. 그랬던 나라가 골프·피겨·펜싱에서부터 수영·양궁·역도·야구까지 메달을 휩쓸고 있다. 산업화로 젊은이들이 살찌고 민주화로 젊은 세대의 미소가 피어났다.

나라가 그리 되니 박태환·김연아·박세리·장미란·류현진·이승엽·박지성 같은 명품이 나오는 거다. 지금 한국 청소년의 평균 신장은 중국·일본보다 높고 이탈리아와 같다. 어떤 명품이 얼마나 더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젊은 명품들에게는 당당함이 있다. 그들은 한국이라는 우물을 벗어나 세계에 뛰어들었다. 운동만큼 단순한 진리는 없다. 그들이 좁은 우물 안에서 왜곡된 진실하고나 씨름하고, 식탁에서 멀쩡한 미국산 쇠고기나 골라내고, 동료들과 인터넷 싸움이나 벌였다면 명품으로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한국의 울타리를 넘어 글로벌 스탠더드(standard)와 경쟁했고 그들 자신이 새로운 스탠더드가 되었다.

지난여름 그들이 선수촌에서 땀을 흘릴 때, 서울 광화문에선 비겁한 폭력이 거리를 휩쓸었다. 그들은 복면과 마스크를 썼다. 경찰 400여 명이 다쳤고 신문사들이 부숴졌다. 익명의 공격자들은 중앙과 조선·동아에 광고를 내는 업체를 공격했다. 그들의 욕설·협박 전화에 업체들은 재앙 같은 피해를 보았다.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수백 명이 몰려다니며 경찰에 새총을 쏘고 돌을 던진다. 지나가던 버스가 돌에 맞는다. 시위 지도부는 사찰에 숨고 시위대는 성당 안으로 도망간다. 제1 야당 지도부가 수배된 과격시위 지도부를 찾아가 위로하고 길을 묻는다. 광우병 파동 그룹은 정의를 위한다고 하지만 그들에겐 당당함이 없다. 복면·익명·집단·성역에 숨기 때문이다.

1970년대 말 어느 날 군복을 입은 나는 서울로 올라오는 열차를 타고 있었다. 어느 역에서인가 용맹하기로 이름 높은 어느 부대 병사 5~6명이 탔다. 나는 서 있었고 근처 좌석엔 평범한 육군 병장이 앉아 있었다. 5~6명 중 한 명이 자리를 양보하라며 그에게 시비를 걸었다. 병장이 물끄러미 쳐다보자 병사 입에선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병장은 조용히 “다음 역에서 너와 나 둘이 내리자”고 했다. 험악했던 병사는 몇 마디 중얼거리더니 슬그머니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날 이후 나는 집단 속에 숨는 용맹은 별로 믿지 않는다.

지난여름, 수천의 과격시위대 중 누구 하나라도 혼자 신문사를 찾아와 당당히 외쳤더라면 신문사는 귀를 열고 들었을 것이다. 수천 중 누구 하나라도 병원에 누워 있는 젊은 경찰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폭력을 사과했더라면 시위사태가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쇠고기 옹호론자 중에선 앞으로 나선 이들이 있었다. 어느 대학생이 험악한 시위현장에서 과격촛불 반대 1인시위를 벌였고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낭패를 각오하고 시청 앞 광장에 나갔다. 그는 협상은 잘못했지만 용기마저 포기한 관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과격한 반대론자들은 정의를 외치면서도 복면에 숨고 익명에 숨고 집단에 숨었다. 지난여름 광화문 폭력현장은 비겁한 이들의 무대였다. 그곳에 오늘 저녁 당당한 명품들의 행진이 있다. 명품의 숨결로 비겁한 추억들이 날아가려나.

김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