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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세상보기>코리안 네트워크의 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난 21일 제1회 「코리안 네트워크」추진대회가 서울 무역센터에서 열렸다.해외 한인(韓人)무역협회가 주동이 된 이 네트워크는 전 세계에 퍼져 살고 있는 한국계 기업인들을 한 조직으로묶어 사업정보를 교환하고 공동사업을 추진하자는 것.현재는 57개국 68개 지회에서 2천6백여명만이 참여하고 있으나 장차 5백50만 해외교포 전체의 구심점으로 만들 계획이란다.
이들의 통신.연락수단은 인터네트나 인공위성이 될 것이며,잘만하면 화교(華僑)나 유대인 못지않은 응집력을 갖춘 한인 경제권(經濟圈)을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주최측은 설명한다.한인 경제권이 형성되면 모국과의 협력사업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라니까 신라방(新羅坊)이나 장보고(張保皐)가 못 이룬 꿈이 확대 부활될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예측에 대해 피식 웃으면서 『꿈 깨시오』라는 말로 찬물을 끼얹기 전에 유대인과 화교의 응집력을 생각해 보고 이슬람 경제권의 태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개혁 이후 중국을 떠난 이른바 신이민(新移民)1백만명을 화교로 편입시켰다.이들은 40~50년대에 중국을 떠났던 화교들과는 비교가 안되는 고급인력으로 대부분 중국에서 대학을 나왔다.화교로 편입되면 투자와 취업은 물론예금이자율까지 우대조치를 받는다고 한다.
이 우대조치에 이끌려 중국의 자본주의 건설에 투자된 화교자본은 거의 6백억달러에 이른다.전체 외국인 투자의 85% 가량을차지하고 있다.중국의 근대화는 어느 누구의 힘도 아닌 중국인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된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닷물 닿는 곳에 화교가 있다」는 말 그대로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화교는 약 5천5백만명.이들이 소유한 유동자산(流動資産)은 약 2조달러에 이른다.세계 각지를 흘러다니는 유동자본이3조달러쯤 된다니까(뉴스위크지 추정) 화교자본의 크기를 알 수있다. 화교는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새로 온 이민자에게 의식주와 사업자금을 제공한다.이들은 공회(公會)라는 조직을 결성해 질서를 유지하고,죽어서는 고국에 묻히기를 소망할 정도로 회귀(回歸)의식이 강하다.
화교의 응집력을 뺨치는 것이 바로 유대인.유대왕국의 멸망과 함께 시작된 이들의 오랜 해외이주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신앙과 말과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다.세계를 이끄는 나라가 미국이고 미국의 정치.경제.문화.과학.학문에 큰 영향 력을 미치는사람들이 유대인들이다.
이들의 성공담을 귀감(龜鑑)으로 삼는다면 코리안 네트워크의 꿈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한국인도 자신의 정체성(正體性)을 유지하는 데는 매우 끈질긴 면이 있잖은가.
해외교포를 상대로 한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기업의 세계화 수준이나 한국 상품에 대한 평가에서 긍정적 답변을 하고 있다.이들이 때때로 한국 상품을 사려고 노력한다거나 강력한 경쟁상대로 화교경제권을 꼽는다고 응답한 데서 코리안 네트워크의 가능성을 감지할 수 있다.
옹졸한 정치싸움에 정신을 팔고 있는 정치권은 이런 문제로 눈을 돌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코리안 네트워크는 단결과 협동의 정신이 바탕이 돼야 하며 그것은 본국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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