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정 뒤차기… 태권V 날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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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이하급 임수정

‘뒤차기의 달인’답게 임수정은 자신의 주무기를 앞세워 8강에서 로빈 청(뉴질랜드)을 4-1, 4강에서 베로니카 칼라브레세(이탈리아)를 5-1로 완파하며 결승에 올랐다. 탄리쿨루와의 결승전에서도 임수정은 경쾌한 발놀림을 바탕으로 뒤차기로 공격을 풀어 나갔다. 1라운드에서 경고 2개로 감점 1점을 받은 임수정은 2라운드에서 오른발 돌려차기로 득점에 성공, 팽팽한 0의 균형을 이뤘다. 운명의 3라운드에서 임수정은 경기 종료 20초를 남길 때까지 상대와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상대는 임수정의 뒤차기 공격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철통같이 몸통을 방어했다. 종료 19초를 남기고 왼발 돌려차기를 시도하려는 탄리쿨루의 몸통이 임수정의 눈에 들어왔다. 임수정은 동물적인 반사신경으로 오른발 뒤차기를 날렸다. 그의 발이 상대 호구에 묵직히 꽂히면서 전광판에는 ‘1’이라는 숫자가 선명히 찍혔다. 우승을 확정하는 회심의 한 방이었다. 그의 우승으로 한국은 이 체급에서 올림픽 3회 연속 우승을 일구며 ‘불패 신화’를 이어갔다.

경기도 부천 부인중 1학년 때 태권도에 입문한 임수정은 스피드가 발군이었다. 그는 한 템포 빠른 공격으로 소년체전을 2연패했다. 전국대회에서도 고등학생은 물론 대학생까지 무너뜨리며 ‘겁 없는 아이’로 떠올랐다. 태권도계에선 세계선수권 2연패를 달성한 임신자 경희대 교수 이후 최고의 테크니션이 나왔다고 찬사를 보낼 정도였다.

서울체고에 진학한 그는 여세를 몰아 부산 아시안게임에 출전, 태권도 대표팀 최연소인 만 16세의 나이에 우승을 차지했다. 세상 모든 게 그의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일찍 핀 꽃은 빨리 시들게 마련이다. 철모를 나이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임수정은 이후 벌어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경기를 리드하고 있으면서도 급하게 공격을 서둘다가 제 풀에 쓰러지는 경우가 잦았다.

2003년 세계선수권을 시작으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5년 세계선수권,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2007 세계선수권 등 5개 국제대회 예선전에서 잇따라 탈락하면서 출전권을 따내지 못했다. 1위에 익숙했던 그에겐 ‘실패한 2인자’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녔다. 잇따른 좌절에 그는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그는 운동을 그만두려고 했다. 더 이상의 실패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때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아버지 임경환(53)씨는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태극마크를 꼭 한 번 달고 그만두라”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아버지의 격려에 그는 용기를 냈다. 마음을 정리하고 베이징 올림픽에 모든 것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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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정은 지난해 9월 맨체스터에서 열린 베이징 올림픽 세계예선에서 1위에 올라 출전권을 획득했다. 그리고 세 차례의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지긋지긋한 2인자의 설움을 날려 버리고 베이징 입성에 성공했다.

임수정은 “속으로 ‘올림픽이 아니다. 편안하게 하자’고 되뇌었다. 자신 있게 한 게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진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다. 끝까지 집중한 게 마지막 뒤차기를 성공시킨 비결”이라며 “부산 아시안게임 이후 6년 동안 무척 힘들었는데 마지막 기회에서 금메달을 따 기쁘다. 넘어지는 사고로 입원해 계신 할머니께 금메달을 보여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베이징=김현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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