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애 최고 안타까운 1초 …‘우생순’ 판정에 울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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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결승에서 아쉽게 패한 후 오성옥이 주저앉아 있다. 다섯 번째 올림픽에 참가한 오성옥은 금메달 사냥에 실패하고, 23일 동메달을 놓고 3~4위전을 벌인다. 오성옥은 이전 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2개를 땄다. [베이징=연합뉴스]

이번에는 그들이 우는 모습을 보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한국 여자핸드볼은 또 한 번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한국은 21일 베이징 국가체육관에서 열린 2008 베이징 올림픽 핸드볼 여자 준결승전에서 노르웨이에 28-29 한 점 차로 졌다. 한국 여전사들은 마지막까지 투혼을 불살랐으나 종료 전 1초 때문에 울었다.

드라마였다. 한국은 전반 베테랑 오성옥(36·히포방크)의 활약을 앞세워 15-14로 한 점 앞섰다. 하지만 한국은 후반전 초반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연속으로 놓쳤고 역전을 허용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힘이 좋은 노르웨이가 경기를 이끌어 나갔다.

그래도 한국 여자 핸드볼의 ‘아줌마 투혼’은 승리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다. 종료 1분을 남긴 후반 29분 25-28, 3점 차로 뒤져 패색이 짙어질 때도 그랬다. 진짜 드라마는 이때 시작됐다.

한국은 안정화와 허순영이 연속 골을 성공시켰다. 1분 동안 거구인 노르웨이 선수들을 악착같이 따라다니며 실점도 막았다.

한국은 종료 30초 전쯤 27-28로 한 점 차까지 따라갔다. 그래도 시간은 노르웨이 편이었다. 노르웨이는 시간만 끌면 이길 수 있었다. 그런데 종료 15초 전 수비가 헐거워지자 슛을 시도했다. 슛이 실패하면서 한국에 천금 같은 기회가 왔다. 공은 상대 골문 앞으로 내달은 문필희에게 길게 연결됐고 그의 점프 슛이 노르웨이 골망에 꽂혔다. 28-28 동점. 종료 7초 전 터진 골로 연장이 거의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한숨을 돌리기에는 여유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동점이 되어 어수선한 상태에서 속공을 한 노르웨이의 그로 하메르셍은 경기 종료와 거의 동시에 슛을 날렸고 공은 골망을 흔들었다.

하메르셍이 슛을 한 이후, 종료를 알리는 버저가 울렸다. 그러나 공이 골 라인을 넘기 전이었다.

한국 벤치는 일제히 일어나 “경기 종료 이후 들어간 골”이라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처음 항의를 할 때 ‘노골’을 선언했던 경기 감독관들은 주심 2명과 상의를 하더니 다시 골을 번복했다. 한국은 환호를 질렀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28-29, 한 점 차 한국의 패배였다.

이기홍 한국 선수단 부단장은 “1시간 내로 구두로 이의 제기하고 9시간 내 서류와 함께 제소하겠다”고 말했다. 임영철 감독도 “절대 노골이다. 노르웨이의 마지막 공격도 파울이었고 골을 넣은 선수도 오버스텝이었다”고 말했다. 이 부단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핸드볼연맹(IHF)에 제소하겠다고 했다.

김진수 부회장은 “받아줄지 안 받아줄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아시아에서 당한 데 이어 올림픽에서까지 이렇게 당하는 것은 협회 차원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정식으로 항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직위가 번복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일단 한국은 4년 전 아테네 눈물의 은메달을 금빛으로 바꾸지 못하고 동메달을 가리는 3~4위 결정전으로 밀려났다.

한국 선수들은 눈시울이 벌게지도록 울면서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했다. 선수들은 경기 종료 후 벤치에 앉아 30분이 지나서야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최고참 오성옥은 눈물을 흘리며 공동취재구역을 빠져나갔다.

경기 전반에 대한 평가를 묻자 임 감독은 “초반에는 우리가 우세했고 후반에는 뒤진 것이 맞다. 우리는 기술 핸드볼을 했고 상대는 힘을 앞세워 압박했다. 패색이 짙었는데 올코트 압박을 하며 기적 같은 동점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임영철 감독은 ‘선수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냐’고 묻자 “대회가 아직 안 끝났는데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꼽으라고 하면 주저없이 우리 핸드볼 태극 여전사 14명을 선택하겠다. 눈물이 날 정도로 열심히 뛰었고 포기는 없었다.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한국은 헝가리와 23일 오후 2시30분(한국시간) 동메달을 다툰다.

베이징=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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