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BGM “승리보다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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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베이징 올림픽 남자 400m 자유형에서 우승한 박태환 선수가 목에 금메달을 걸었던 순간, 방송에서 그 감동을 배가시켜준 노래가 있다. 미국의 남자가수 클레이 에이킨의 발라드곡 ‘온 마이 웨이 히어’(On My Way Here)다. ‘최고의 순간도, 최악의 순간도 경험하며 지금 이 자리에 섰다. 믿음이 두려움을 이겨냈다’는 가사는 박 선수의 성공 스토리와 맞물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MBC 올림픽 방송을 통해 전파를 탄 이 노래는 방송 직후 인터넷에서 곡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며 큰 화제가 됐다. 현재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도 큰 인기다.

스포츠 승리의 순간에 깔리는 배경음악으로 발라드곡이 쓰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승리의 순간 배경음악으로 보통 그룹 퀸의 ‘위 아 더 챔피언스’(We Are The Champions), 그룹 코리아나의 ‘투 더 빅토리’(To The Victory), 조수미의 ‘오 대한민국’ 등이 흔히 쓰였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는 이 노래들을 듣기 힘들다. 대신 좌절하지 말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자는 가사를 가진 팝송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승리감을 고취시키는 노래보다는, 꿈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곡들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삶에는 시련이 찾아오기 마련이지. 앞으로 계속 나가야 해. 옆으로 빠져 있으면 안돼. 당당하게 서서 싸워야 해’<도나 섬머의 ‘스탬프 유어 핏’(stamp your feet)>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니까…아무도 멈출 수는 없어.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어’<크리스털 마이어스의 ‘메이크 섬 노이즈’(make some noise)>

SBS 올림픽 방송과 삼성의 올림픽 광고에 쓰인 퀸의 ‘아이 워즈 본 투 러브 유’(I Was Born To Love You)도 로맨틱한 사랑 노래지만,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음색과 가사가 목표를 향해 열정을 쏟아붓는 선수들의 노력과 잘 어울린다는 평가다.

강재덕 광고음악 감독은 “스포츠 방송과 광고의 배경음악이 예전에는 멜로디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올림픽 배경음악은 가사나 메시지를 고려해 선택한 것 같다”며 “메달 색깔보다는 그동안 쏟아부은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과도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순간의 감격보다는 감동이 더 중요해졌다는 얘기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한국 대표팀이 스위스전에서 패한 뒤 MBC 방송의 배경음악으로 나왔던 ‘히어 미’(Hear Me·짐 브릭만)가 축구팬들의 상심을 달래줬고, 광고음악으로 쓰인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웨스트라이프)은 이동국 선수의 시련과 맞물려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정현목 기자



“시련 겪을수록 더 성장한다는 메시지 담아”
박태환 금메달 송 ‘온 마이 … ’ 부른 에이킨

클레이 에이킨(30·사진)은 미국의 신인발굴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시즌2’가 발굴한 스타다.

프로그램에서는 준우승했지만, 2003년 데뷔 앨범 ‘메저 오브 어 맨’(Measure Of A Man)으로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올라 ‘우승자 같은 준우승자’라고 불렸다. 특수교육 교사를 꿈꿨지만, 한 번의 방송 출연으로 인생이 바뀌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유니세프 활동도 적극적이다. 5월 발매한 네 번째 앨범 ‘온 마이 웨이 히어’로 인기몰이중이다. 그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온 마이 웨이 히어’가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살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겪는 모든 일들이 나 자신을 만든다. 이 곡은 경험을 통해 배우고 더 현명한 사람이 되자는 의미를 담았다. 시련을 겪을수록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한다고 믿는다.” 

-메달 색깔 때문에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다.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준우승에 그쳐 아쉽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얻은 교훈은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1등이건 12등이건, 열심히 하면 그만큼 대가를 얻을 수 있다. 물론 1등을 하면 많은 권리가 주어지지만, 그것을 지켜내는 것은 개인의 노력에 달려 있다. 만약 우승을 했어도 내 인생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스타발굴 프로그램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나 자신이 돼야 한다. 사람들은 외모부터 행동, 음악 성향까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바꾸려 들 것이다. 하지만 흔들리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밀고 나가야 한다.”

-어릴 때 돌봤던 자폐아 마이클 뷰블의 이름을 따 자선 재단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이젠 마이클 뷰블도 청년이 됐다. 마이클을 가르치며 많은 것을 배웠다. 선생님이 되려면 정말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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