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영희 칼럼

유라시아 ‘냉전 후 질서’의 종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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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국과 나토가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 채 그루지야 국토의 일부가 러시아에 점령당하고, 그루지야 대통령 사카슈빌리는 대통령 자리 보전도 어렵게 됐다.

동물원의 곰은 반격 태세를 갖추고 버릇없는 아이의 도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한 이후 러시아는 미국과 서유럽으로부터 많은 수모를 당했다.

나토는 러시아의 반발을 무시하고 옛 동유럽권과 소연방 지역으로 영역을 넓히는 동방 확대정책을 꾸준히 폈다. 헝가리· 폴란드·체코 ·발트 3국이 나토에 가입했다.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의 가입 추진이 러시아를 자극한다.미국은 체코와 폴란드에 미사일 방어망 기지까지 구축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지난 20일 폴란드 총리와 미사일 방어망에 관한 합의에 서명하는 자리에서 폴란드에 설치하는 미사일 방어망이 북한과 이란 같은 나라에서 날아오는 장거리 미사일을 격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 러시아의 속을 뒤집는 눈 감고 아웅이다.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이름으로 중동과 발칸반도와 동유럽과 옛 소련 제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과 이권을 잠식했다. 미국이 2001년 아프간 전쟁 때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 군사적인 교두보를 확보한 것은 러시아에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실현되면 더 큰 굴욕일 것이다.

카스피아해 연안의 석유와 가스를 지중해로 보내는 바쿠(아제르바이잔)-트빌리시(그루지야)-제이한(터키) 파이프라인(BTC)이 러시아 땅을 살짝 우회하게 한 것도 미국이다.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20년 동안 미국의 독점적인 군사·경제적 이권 추구는 유라시아 대륙을 종횡으로 횡단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사회주의 체제의 패배와 자유민주주의 승리의 과실을 홀로 즐겼다. 그래도 90년대의 러시아는 속수무책이었다.

소연방은 15개의 공화국으로 분열되고, 거기서도 발트 3국이 떨어져 나갔다.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강력한 리더십과 석유가격 폭등에 힘입어 2000년대에 와서 경제적으로 기력을 회복할 때까지 미국과 서유럽의 영향력 확대에 대항할 수단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한때 세계를 양분하던 소련제국의 권세는 아니라도 러시아는 이제 경제·군사적으로 국제무대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제 밥그릇을 챙길 수 있는 수준까지 국력을 회복했다. 푸틴주의(Putinism)은 소련제국뿐 아니라 제정 러시아에 대한 러시아 국민들의 향수까지 자극하면서 잃어버린 영향력을 되찾고 있다.

사카슈빌리의 치명적인 과오는 이런 푸틴주의의 성격과 비전을 과소평가하고 스스로 러시아가 쳐놓은 함정에 빠져든 것이다. 사카슈빌리는 러시아가 호시탐탐 국면전환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을 못 봤다. 미국도 남오세티야를 침공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그는 일단 개전을 하면 지원이 쏟아질 것으로 오판했다. 지도자가 순진하면 국민이 고달픈 고전적 사례다.

그루지야 전쟁은 카프카스의 오지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이지만 냉전 후 유라시아 국제질서의 흐름을 바꾸는 큰 전환점이 될 것이고 또 되어야 한다.

나토의 동방 확대는 후퇴가 불가피하다. 많은 친미 국가들이 미국의 지원 약속의 신뢰성에 의문을 가질 것이다. 미국은 탐욕스러운 세력 확장 대신 러시아를 진정한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일각에서 주장하는 러시아 고립정책은 사태를 확대시킬 뿐이다. 러시아의 협조가 없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너무 많다. 동북아 평화, 북핵과 이란핵, 이라크를 포함한 중동 문제, 기후변화가 대표적인 문제들이다. 한국 정부가 그루지야 전쟁에 입장표명을 유보한 것은 현명한 판단이다.

김영희 국제문제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