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칼럼>입시부담에 사라진 고교산악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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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고교 산악부가 종적을 감춘 것은 이미 오래 전 이야기다.
대학입시의 버거운 짐을 진 고등학생들에게 산악부 활동은 아련한 옛 이야기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고교 산악부의 등산활동은 매우 왕성했다.전통을 자랑하는 몇몇 고교 산악부는 훌륭한 선배들의 성원과 학교 당국의 후원에 힘입어 열성적인 서클활동을 펴왔다.
또한 산악부는 모교의 전통계승과 애교심 형성에도 한몫을 해왔다.과거 왕성한 활동을 했던 고교 산악부로는 경기.양정.중앙.
보성.서울.용산.경동고교 등이 손꼽힌다.
국내 고교 산악운동은 193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암울했던일제 치하에서 민족주의 성향의 교사가 산악부를 지도하면서 국토애.민족애 등을 고취했고,등산활동을 통해 개척정신과 강인한 체력을 키워주기도 했다.
양정고보 산악부의 경우 김교신(종교인.항일운동가)선생같은 분이 직접 지도를 해 독립사상을 고취하기도 했다.국내 근대등산이태동하던 시기에 출발한 이 학교 산악부는 일찍부터 등산을 스포츠로 받아들여 근대 알피니즘을 한국의 산에 꽃피 워나간 전위 대열에 섰다.
일제 때부터 시작된 고교 산악부 활동은 광복 후 산악계에 지도급 인사들을 다수 배출했으며 이들은 국내 산악운동에 중추적인역할을 담당했다.
1973년에는 건국이래 처음으로 「한국고교산악연맹」이 결성돼전국 24개 고교에서 8백3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했고 학교당국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왕성한 등산활동을 펼쳤다.
고교 산악운동이 침체된 원인은 단지 대입시험의 부담만이 아니다.어른들의 과잉보호 속에서 성장한 청소년들은 힘든 활동을 기피하게 됐다.
다가오는 2000년대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은 등산을 통해 자연의 오묘한 이치를 몸소 체험하고 온갖 난관을 이겨낼 수 있는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키워야 한다.
현재의 교육제도는 청소년들에게 너무나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다.전통있는 모고교의 경우 학교장 자신이 대학 산악부 출신이자그 고교의 동문이다.그러나 치열한 입시경쟁으로 오랜 전통을 지닌 산악부마저 해체하게 됐다.
말로만 전인교육을 앞세우는 국내 교육계의 현실을 보는 것같아안타깝다.
이용대〈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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