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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수영 마라톤 ‘외발 투혼’ … “오늘은 꿈 이룬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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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나탈리 뒤 투아가 여자 수영 마라톤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뒤 투아는 의족을 벗고 10를 완주했다. [베이징 AFP=연합뉴스]

10㎞ 수영 마라톤을 세계에서 16번째로 빨리 헤엄친 여자 선수는 왼쪽 다리가 없었다.

나탈리 뒤 투아(24·남아공). 2시간이 넘는 긴 레이스를 마치고 물 밖으로 나온 뒤 쇠로 만든 의족에 의지해서 걸음을 옮겼다. 뒤 투아의 의족은 마치 ‘로보캅’의 다리처럼 햇빛을 받아 반짝였지만 그의 웃음은 더 눈부셨다.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뒤 투아를 향해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뒤 투아는 20일 베이징 순이 조정카누경기장에서 열린 베이징 올림픽 여자 수영 마라톤(10㎞)에서 2시간49초의 기록으로 전체 25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16위에 올랐다. 지난 5월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오픈워터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10㎞에서 2시간02분07초8로 4위를 차지하며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뒤 투아는 자신의 기록을 1분17초9 앞당겼지만 메달권에 들지는 못했다. 1위 라리사 일첸코(러시아·1시간59분27초7)보다 1분22초2 뒤진 기록이다.

◇다리를 잃고 꿈을 얻다=뒤 투아는 6세 때 운동을 시작한 수영 선수였다. 그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선발전에서 아쉽게 탈락한 뒤 “꼭 다음 올림픽 무대에 서겠다”고 각오를 다졌던 유망주였다. 하지만 17세였던 2001년 교통사고를 당해 왼쪽 무릎 아랫부분을 잘라내야 했다.

당시를 회상하면 그는 아직도 목이 멘다. 20일 기자회견에서 뒤 투아는 “그때 나는 모든 걸 포기했다. 수영은 물론이고 공부도 포기했다”고 말했다. 상냥하고 쾌활한 목소리와 환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던 뒤 투아도 이 말을 할 때는 눈물을 꾹 참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다시 일어서게 한 건 바로 수영이었다.

뒤 투아는 “다리를 절단하고 나서도 수영에 대한 열정은 없앨 수가 없었다. 다시 수영을 시작했다. 수영을 할 때는 마치 왼쪽 다리가 그대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2002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영연방대회에 출전해 비장애인과 처음 겨뤘다. 여자 자유형 800m에서 8명이 겨루는 결승에 진출했고, 당시 6관왕에 오른 이언 소프(호주·은퇴)를 제치고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뒤 투아는 2004 아테네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에선 수영에서 금메달 5개와 은메달 1개를 땄다. 하지만 패럴림픽 금메달만으로는 그가 16세 때 꿈꿨던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룰 수 없었던 모양이다. 뒤 투아는 상체 근육을 더욱 단련시켜 수영 마라톤에 도전했다.

◇꿈을 이루다=지난 5월 뒤 투아는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뒤 투아는 “올림픽 티켓을 따고 펑펑 울었다. 오늘 이렇게 경기를 마친 게 나에게는 꿈이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패럴림픽과 올림픽에 동시에 참가한 첫 수영 선수다.

이날 수영 마라톤 경기장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주인공은 메달리스트들이 아니라 뒤 투아였다. 우승자 일첸코는 “뒤 투아를 존경한다”고 몇 번씩 강조하면서 “아마 그가 왼쪽 다리가 있었다면 우승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결과만으로도 칭찬할 만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은메달을 딴 케리-앤 페인(영국)은 “뒤 투아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불가능은 없다는 걸 보여줬다”고 말했다.

뒤 투아는 “16위에 머문 게 아쉬웠다”면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톱 5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때 남아공 국기를 들고 기수로 입장했던 그는 올림픽이 끝나고 열리는 패럴림픽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뒤 투아는 “챔피언이 될 필요도 없었고, 메달도 필요 없었다. 사고로 다리를 잘라내고 병원에 있을 때 오늘날의 내가 있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내 꿈을 이뤘다는 게 중요하다”며 활짝 웃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뒤 투아에게 사인을 요청했다. 그는 ‘최선을 다해 별(꿈)을 향해 나아가고,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썼다. 정성스레 글씨를 쓴 뒤 그는 별을 하나 그려 넣었다. 활짝 웃고 있는 별이었다.

베이징=이은경 기자



수영 마라톤이란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수영 마라톤’이 첫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이 종목은 실내 수영장이 아닌 바다 혹은 강 등 야외에서 10㎞를 헤엄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 1개씩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여자 경기가 20일 열렸고, 남자 경기는 21일에 열린다.

경기 방식은 10㎞ 코스를 헤엄치는 것이며, 물속에서 헤엄치는 선수들을 구분하기 위해 어깨와 양팔, 양손 등에 번호를 적는다. 이를 통해 레이스 중에 선수의 위치와 규정 위반자를 가려낼 수 있다. 선수들이 경기하는 동안 심판들은 보트를 타고 선수들을 지켜보며, 규칙을 어기는 선수가 있으면 호각을 불어 경고를 준다.

반칙이 나오면 몸에 적힌 번호를 보고 심판들이 벌점을 준다. 다른 사람의 진로를 방해하거나 비신사적인 행동을 하면 옐로카드를 받으며, 이 때 심판은 호각을 불면서 노란 깃발을 흔든다. 옐로카드를 두 차례 받으면 실격당한다.

출발 지점에서 선수들은 반드시 수영모를 써야 하지만 경기 도중엔 벗어도 상관없다. 물속에서 출발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올림픽에선 출발대에서 스타트한다.

두 시간가량 헤엄쳐야 하는 선수들은 보통 5㎞ 이상부터 음료수 또는 젤리 형태의 음식물을 섭취한다. 수영복에 음식물을 챙겨 넣는 선수들도 있다. 음식물을 주는 장소가 정해져 있어 코치들은 국기가 걸린 긴 장대 끝에 음료수나 음식물을 매달아 선수에게 전달한다. 선수들은 잠시 배영으로 영법을 바꿔 물을 마시면서 헤엄친다. 이때 코치들이 선수에게 작전 지시를 하기도 하고, 여분의 수영모나 물안경을 건네기도 한다.

베이징=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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