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대중문화 건전화를 위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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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공연윤리위원회는 지난 12일 창립 30주년을 맞이했다.그동안권위주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우여곡절도 없지 않았지만 문민시대에들어와서는 과거와 같은 정치적 의도는 완전히 배제하고 예술창작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지나친 음란.퇴폐 .폭력물만을 심의대상으로 삼고 있다.따라서 최근에 공륜의 심의대상에 올라 사회적으로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내용은 특정종교와 관련된 것과 예술을 빙자해 지나치게 상업성을 추구한 저질작품,그리고 폐수와같은 사회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극단적인 소수의 작품에불과했다.
모든 예술작품 가운데 유독 영화.비디오.새영상(CD롬.롬팩)등 영상물에 대해서만 사전심의가 이뤄지고 있는데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이는 우리나라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세계 모든 나라들이 예외없이 영상물에 한해 사전 심의를 하고 있다.다만 나라마다 사전심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차이가 있을뿐이다.미국.일본은 순수 민간자율기구에서,프랑스.영국은 우리나라와 같이 반관반민(半官半民)단체에서,스웨덴.캐나다는 정부기구에서 직접 심의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
영상물 이미지는 수용자에게 의식은 물론 무의식에까지 선택의 여지없이 메시지를 뇌리에 심어주게 된다.특히 판단능력이 부족하고 모방의식이 강하며,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기 때문에 문제장면의 삭제와 함께 등급제 심의를 병행하지 않을 수 없다.
영상물에 대한 심의를 검열과 혼동하는 경향도 없지 않은데 여기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검열은 국가권력이 직접 나서 정치적목적을 가지고 영상물 내용을 일정방향으로 몰아가기 위해 삭제.
변조 또는 상영금지하는 행위를 말한다.
현재 공륜에서 행하고 있는 사전심의는 그러한 검열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공륜의 일부 예산과 윤리위원 위촉에 있어정부와 관련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륜의 주임무인 심의업무는 학계.언론계.문화예술계와 학부모를 대표하는 순수 민간인들에 의해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심의는 대체로 모든 나라가 문제장면 삭제와 등급제를 병행하고있는데 반해 유일하게 미국만이 완전등급제를 실시하고 있다.완전등급제로 가기까지는 등급외 극장 허용등 거쳐야 할 고비가 많다. 심지어 영상물의 사전심의에 대해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들어헌법상 기본권을 유린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방종으로 흐르는 것을 허용할 수 없으며,공공질서유지를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는 법률에 의해 부분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는 것이 올바른 헌법해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공해에 대해서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정신공해에 대해서는 둔감한 편이다.그러나 정신공해가 미치는영향은 물질공해보다 더 심각할 때가 있으며,경우에 따라 인류문명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원초적 역할을 하게 된다 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에 대한 대비책도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공륜은 바로 그러한 정신공해를 부분적으로나마 걸러내는 여과장치 역할을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구미선진국에서도 새영상물에 의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음란.퇴폐.폭력과 마약의 침투현상은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인터네트와 위성방송의 보편화는 국경을 초월하고 있으며,밀수입되는 불법 영상물은 등 급제에 의한연령층까지 파괴하면서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다.이러한 때에 최후의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공륜을 비롯한 방송.정보통신.간행물 등의 심의기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심의기구가 온존하지 못하고 예술을 빙자하면서 영리만을목적으로 저질 문화를 양산하고 있는 일부 업자에 의해 그 권위와 공신력이 훼손될 때 대중문화는 겉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윤상철 공연윤리委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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