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했던 꿈·사랑·돈 …‘제2 조국’선택한 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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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모로코 출신의 육상 장거리 선수 라쉬드 람지(28)는 19일 베이징 궈자티위창에서 열린 남자 육상 1500m 결승에서 3분32초94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며 금메달을 따냈다. ‘제2의 조국’ 바레인이 6전7기 만에 따낸 올림픽 1호 메달이었다. 람지는 “중동의 작은 나라 바레인의 영광이다. 바레인 국민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 소감을 말했다.

람지는 모로코 항만도시 사피에서 가난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19세 때 모로코 대표로 아프리카 주니어챔피언십 1500m에서 은메달을 따낸 기대주였다. 성인 대회에 출전할 즈음, 2002년 람지는 친구의 조언을 받고 동료 3명과 함께 바레인으로 귀화하기로 결심했다.

바레인은 오일달러를 앞세워 실력이 뛰어난 이방인을 적극적으로 영입했다. 람지와 함께 1500m 결승에 진출한 만수리 알리 베랄도 2005년 케냐에서 바레인으로 국적을 바꿨다. 람지는 바레인 국적을 취득한 뒤 군인이라는 안정된 직업을 얻었고 고액 보너스도 받았다.

귀화 후 람지가 뛰어난 성적을 거두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2003년에는 오른쪽 장딴지 근육 부상으로 세계선수권에 출전하지 못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6주 앞둔 국제대회 1500m에서 당시 중거리 1인자 히참 엘 게루지(33·모로코)의 29연승을 저지해 올림픽 메달 후보로 떠올랐으나 정작 올림픽에서는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2005년 세계선수권에서는 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800m, 1500m를 석권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해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에서도 800m 우승을 차지했다. 2007년 오사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1500m에서 은메달을 따면서 건재를 과시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1500m와 5000m에 도전장을 던졌고 주종목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과감한 투자를 한 바레인에 영광을 안겨줬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역도 선수 마티아스 슈타이너(26·독일)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오스트리아 대표로 출전해 7위에 머물렀다. 이듬해 독일로 이민, 독일인 수잔과 결혼했다. 그러나 시민권을 얻기까지 3년 동안 국적 문제로 국제대회에 참가하지 못했고 지난해 7월에는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었다.

시련에도 좌절하지 않고 올 1월 독일 시민권을 얻은 슈타이너는 19일 남자 +105㎏급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아내에게 메달을 바친다. 아내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는데…”라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토고 출신의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를 둔 벤자민 보크페티(27)는 올림픽 메달을 따기 위해 국적을 바꾼 경우다. 보크페티는 자신이 태어나 생활한 프랑스의 카누 대표 선발전이 워낙 치열했기에 딱 한 번 방문한 적이 있는 토고 국기를 가슴에 달았다. 그는 남자 카약 슬라롬(급류회전) 1인승 부문에서 동메달을 획득, 토고에 올림픽 첫 메달을 선사했다.

한국이 탁구 여자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따는 데 활약한 당예서(27)는 한국 최초의 귀화 메달리스트라는 기록을 세웠다. 당예서는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루기 위해 2001년부터 한국으로 건너와 지난해 귀화했다.

당예서 이외에도 탁구에는 중국 출신의 선수가 많다. 리자웨이(27)는 여자 단체전에서 싱가포르에 은메달을 안겼다. 리 치안·주지에(폴란드), 우 지아더우·바르텔(독일), 쉔얀페이(스페인), 루이우(크로아티아), 류송(아르헨티나), 허즈원(스페인) 등도 새로운 나라에서 당당히 대표가 됐다.

한국은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양궁에서 다른 나라의 국가 대표를 배출했다. 일본 여자 대표 하야카와 나미(24·한국명 엄혜랑), 호주 남자 대표 스카이 김(26·한국명 김하늘)이 그들이다. 양궁에서는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한국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엄혜랑은 개인전 8강전에서 한국의 박성현과 맞붙어 패배했다.

베이징=한용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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