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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미친 50년 흔적을 공개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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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영화자료 수집가 정종화씨가 20일 ‘한국영화 포스터전’에서 자신이 50년 넘게 모아온 고전영화 포스터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김성룡 기자]

1956년 10월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경보극장. 지금은 없어진 이 극장의 2층 화장실로 까까머리의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몰래 숨어들어간다. 대학교수 부인이 젊은 남자와 춤바람 난다는 내용으로 당시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킨 영화 ‘자유부인’(근대 등록문화재 347호)을 보기 위해서였다. ‘자유부인’은 미성년자 관람 불가였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학생 신분으로 영화를 볼 길이 없었다.

이 학생은 훗날 2만 점이 넘는 영화 자료를 모으며 한국 영화사에 없어서는 안 될 산증인이 된다. 스스로 ‘영화에 미친 남자’라고 부르는 정종화(66)씨다.

정씨는 20일 그동안 소중하게 간직해 왔던 한국영화 포스터, 김승호·김지미·문희 등 배우들의 사진, 극장표·전단지 등 영화자료 1100여 점을 시민에게 선보였다. 21일까지 서울 청계천 한화빌딩 앞 베를린광장과 중구문화원 예문갤러리에서 열리는 ‘한국영화 포스터전-영화에 미친 남자 정종화 컬렉션’이다. 다음달 3일 제2회 충무로 국제영화제의 개막을 앞두고 영화제 홍보를 위해 마련된 행사다.

이 자리에선 ‘춘향전’(55년)과 ‘자유부인’부터 ‘왕의 남자’(2005년), ‘밀양’(2007년)까지 50년대 이후 한국영화 대표작 100편의 포스터를 감상할 수 있다.

◇영화 포스터 수집 50년=정씨가 갖고 있는 포스터 중엔 ‘춘향전’이나 이만희 감독의 ‘만추’(66년) 등 국내 유일본도 적지 않다. 그는 “이규환 감독의 ‘임자 없는 나룻배’(32년)는 85년 청계천 헌 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해 당시로선 적지 않은 돈인 20만원을 주고 구입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안정효 원작, 정지영 감독의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94년)는 정씨의 자료 제공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극장 벽이나 골목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떼어 내는 것은 예사였고, 심지어 아무도 없는 극장 사무실에 잠입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영화에 빠져 살다 보니 사회에 나와서는 영화계를 맴돌며 생계와 영화자료 수집을 동시에 해결했다. 대한극장을 비롯한 극장 3곳, 영화제작사 7곳, 영화잡지사 5곳을 오가며 각종 일을 했다. 그의 명함에는 ‘영화정보센터’ 대표와 영화연구가라는 타이틀이 새겨져 있다. 자신이 모은 2만여 점의 방대한 영화자료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그럴듯한 자료전시실을 만드는 것이 반세기 이상 ‘충무로 키드’로 살아온 노(老)영화광의 꿈이다.

◇다시 보는 고전영화=최신 인기영화는 길게 줄을 서야만 표를 살 수 있었던 서울시내 극장가는 곳곳에 생긴 복합상영관(멀티플렉스) 때문에 옛 풍경이 돼 버렸다. 멀티플렉스는 개봉관이니, 재개봉관이니 하는 구분을 아예 없애버렸다. 충무로 주변만 해도 과거 대한·명보·수도(스카라)·국도·중앙극장이 명성을 누렸으나 이제는 대한·중앙극장(중앙시네마)만 남았다. 그나마 일찌감치 멀티플렉스로 개조한 덕분이다.

골목길마다 덕지덕지 붙어있던 영화 포스터도 웬만해선 보기 어렵게 됐다. 예전엔 영화 포스터가 가장 중요한 홍보수단이었으나 이제는 인터넷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붓으로 글씨를 쓰고 영화 장면의 사진을 짜깁기하던 촌스러운 포스터는 컴퓨터를 활용한 깔끔한 디자인으로 변모했다.

영화표도 손으로 일일이 적은 뒤 입구에서 매표원이 찢어서 확인하던 방식에서 복합상영관 출범 이후 컴퓨터로 출력하는 전자식으로 바뀌었다. 이번 전시회에선 구식 극장표와 팸플릿·전단지도 소개됐다. 정씨는 “시대가 변하면서 극장가의 풍경은 화려하고 세련돼 가지만 인간적인 정감은 오히려 사라져가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발견·복원·창조’를 주제로 하는 충무로영화제는 정씨의 포스터에 등장하는 고전영화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다. 영화제의 ‘한국영화 초대전’ 코너에선 신상옥 감독의 ‘어느 여대생의 고백’(58년), ‘미워도 다시 한번’(68년), ‘카인의 후예’(68년) 등이 상영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영화 ‘청춘의 십자로’(34년)도 변사의 구성진 해설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장선우 감독의 영화 ‘경마장 가는 길’(91년), ‘화엄경’(93년), ‘너에게 나를 보낸다’(94년) 등도 오랜만에 관객과 만난다.

주정완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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