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배명복시시각각] 파티가 끝난 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특수제작한 마스크를 쓰고 서우두(首都) 공항에 나타난 미국 사이클 선수들에게는 안된 얘기지만 공해로 인한 호흡 곤란으로 구급차에 실려나간 선수는 아직 없었다. 비구름을 갖고 노는 비상한 재주 때문인지 날씨도 그만하면 좋았다. 우려했던 위구르 분리주의자들의 테러도 없었다. 한국 선수들이 용전분투한 양궁장에서 호루라기를 분 것과 간간이 보이는 편파 판정 시비를 빼고는 특별히 눈총받을 일도 없었다. 그만하면 성공한 파티라고 자부할 만하다.

하지만 성공 여부를 속단하긴 이르다. 파티가 끝난 이후를 봐야 한다. 과연 중국은 파티의 효과를 볼 것인가, 아니면 후유증에 시달릴 것인가. 냐오차오(鳥巢)의 성화가 꺼지면 중국 경제의 불꽃도 함께 꺼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가 하면 국운상승의 새로운 전기가 될 거라는 관측도 있다.

미국 예일대 교수인 에이미 추아가 쓴 『제국의 미래(Day of Empire)』를 읽으면서 베이징의 파티 이후를 생각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중국계 미국인인 추아 교수가 쓴 이 책은 지난해 10월 출간과 동시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책에서 그는 중국 역사상 이민족과 외국 문화에 가장 관대했던 나라는 당나라였다고 지적한다.

당의 수도 장안은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인구가 많았다. 또 가장 다양한 인종이 모여드는 세계의 중심이었다. 아라비아의 외교사절과 인도·페르시아·시리아의 상인, 한반도와 일본에서 온 승려와 학생, 네팔·티베트·시베리아 출신의 부족장, 부하라·사마르칸트·타슈켄트에서 온 화공과 악사 등 외국인이 장안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외국인들은 이슬람교든, 불교든, 유대교든, 기독교든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신을 섬길 수 있었다.

한 국가가 세계적 차원에서 경쟁자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능력과 지혜를 갖춘 인재들을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추아 교수는 주장한다. “인종·종교·민족·언어 등 여러 면에서 이질적인 개인이나 집단이 그 사회에 참여하고 공존하면서 번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자유”를 관용으로 정의한 그는 역사상 초강대국으로 군림했던 나라들은 예외 없이 관용의 정신을 발휘했다고 강조한다. 당이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관용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의 화려한 개막식을 통해 중국은 ‘강한성당(强漢盛唐)’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강력했던 한나라와 융성했던 당나라를 21세기에 재현하는 것이 중국의 비전임을 암시했다. 과연 가능한 꿈인가.

추아 교수의 전망은 부정적이다. 중국이 수퍼파워는 될 수 있어도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hyperpower)’이 되긴 어렵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적 자본을 유인하고, 그들에게 충성심과 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관용의 정신이 중국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인구의 92%를 차지하는 한족 중심의 편협한 중화 민족주의의 벽을 중국이 뛰어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파티의 끝은 허전하고 피곤하기 마련이다. 중국은 지친 몸을 추슬러 손님이 떠난 파티장을 치우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파티 이후로 미뤄뒀던 복잡한 집안문제를 챙겨야 한다. 세계는 티베트와 위구르 문제를 중국 정부가 어떻게 다루는지 지켜보면서 과연 중국이 관용의 정신이 충만한 ‘21세기의 당나라’가 될 수 있을지 점쳐보게 될 것이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