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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종수시시각각

합리와 이성이 설 땅을 잃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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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른바 촛불시위가 무려 100번을 넘었다고 한다. 올림픽 열기에 맞춰 신기록을 세울 작정이 아니라면 이제는 지겨워질 만도 하건만 횟수를 세 가며 시위를 계속하는 집념이 대단하다. 촛불시위에 굳이 ‘이른바’란 첨언을 한 이유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촛불시위에 촛불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시위를 이어가려는 주도 세력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일반 시민의 모습은 잘 보이질 않는다. 애초에 촛불집회를 촉발시켰던 광우병 얘기마저 쏙 들어간 지 오래다. 이제 이들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무작정 반대’밖에 없다. 왜 시위를 하는지 명분도 뚜렷하지 않다. 그저 시위를 계속하겠다는 맹목적인 관성뿐이다. 경찰에 체포된 폭력·극렬 시위자의 면면은 시위의 성격이 어떻게 변질됐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노숙자·무직자·전과자들이 대부분이다.

일견하여 사회에 이런저런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보인다. 촛불시위는 이제 이들의 불만 해소와 한풀이 마당이 돼버렸다. 이른바 진보 세력과 사회불만 세력이 이런 식으로 짝을 맞출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다 사그라져 가는 촛불시위 얘기를 새삼 꺼낸 것은 이 나라에 앞으로 합리적 사고나 이성적 판단이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문제가 됐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광우병 우려는 이미 결판이 났다. 과학적으로 광우병 발병 위험이 거의 없음이 밝혀졌다. 무엇보다 국내에 시판 중인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은 광우병 걱정이 기우였음을 입증했다.

그렇다면 이제 차분히 되돌아 보자. 넉 달 넘는 기간 동안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광우병 논란이 과연 합리적인 사고나 이성적 판단에 의한 것이었는지, ‘뇌 송송, 구멍 탁’이라는 주장이 얼마나 비과학적이며 터무니없는 논리적 비약이었는지, 45억분의 1이라는 광우병 발병 확률은 실제로 어느 정도의 위험을 뜻하는지, 그리고 그 정도의 위험을 제로로 만들려면 얼마나 큰 비용이 드는지. 그만한 비용이면 우리 어린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생활 주변의 위험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를 조목조목 따져보자는 것이다.

수고스럽겠지만 이런 반추의 시간을 갖지 않으면 앞으로 쇠고기 사태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합리와 이성이 사라진 자리에 근거없는 괴담과 선동적인 구호가 싹튼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이해와 직결된 문제에 대해서는 제법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한다. 이득과 손실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선택한다. 그런데 그 범위를 넘어서는 사회적 현안에 대해서는 갑자기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돌변하고 만다. 평소에는 꽤 합리적인 사람조차 과학적 근거나 논리적 추론을 외면하고 터무니없는 과장과 의도적인 왜곡에 속절없이 무릎을 꿇는다. 우리 사회가 집단적으로 쇠고기 사태의 전말을 되짚어 봐야 할 이유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항상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만은 없다. 때로는 뻔히 손해 보는 줄 알면서도 부득이하게 그런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 해서 합리와 이성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손해 보더라도 왜 손해를 보는지, 얼마나 손해 보는지를 알면서 무릅쓰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전혀 다르다. 막무가내식의 불합리하고 비이성적 행동은 오래 지탱할 수 없다. 잘못된 판단과 결정에 따르는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쇠고기 사태는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최근 578억원을 KAIST에 쾌척한 류근철 모스크바국립공대 교수는 얼핏 불합리하고 비이성적 결정을 내린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거금을 아무런 대가없이 기부하는 행위는 경제적으로 분명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이다. 그러나 류 교수의 마음속에는 더 큰 합리와 이성이 작동했음이 틀림없다. 개인적으론 경제적 손실일지 모르지만 그 기부금이 가져올 미래의 성취와 만족감을 훨씬 높게 평가한 것이다. 참으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정이 아닐 수 없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