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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美에 잇단 쓴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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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日 의원 집단 신사참배
일본 국회의원 84명이 22일 오전 야스쿠니 신사에 집단 참배했다. 이날 참배는 신사의 연례행사인 봄철 대제(大祭)를 맞아 이뤄졌으며 모리 요시로 전 총리도 참배했다. [도쿄=AP 연합]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미국에 대해 '노(No)라고 말하는'총리로 변했다. 최근 잇따라 미국의 중동 정책에 쓴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해 3월 이라크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일방적으로 미국을 지지, 일본 내에선 미국을 일방적으로 추종한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따라서 고이즈미 총리의 최근 발언 배경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고, 일본의 이라크 정책이 유엔 중심으로 바뀔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쓴소리=도쿄(東京)신문 22일자에 따르면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20일 재계 인사들과의 만찬 모임에서 "미국은 미국의 색깔을 버리고, 사리사욕 때문이 아니라 이라크를 위해 주둔하고 있다는 입장에서 부흥 지원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다음달 기자들이 발언취지를 묻자 그는 "이라크 재건은 이라크인밖에 할 수 없다. 미국도, 유엔도, 일본도 아니라는 점을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일방적인 이라크 정책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풀이됐다. 이에 앞서 지난 17일 이스라엘이 이슬람 무장단체인 하마스의 최고지도자 압델 아지즈 알란티시를 암살했을 때는 "(행동을 묵인하는) 미국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지만 나는 용인할 수 없다"며 미국과 입장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배경=이라크 무장세력의 일본인 5명 납치사건 이후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고이즈미 총리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정치적 안전판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발언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정계에선 미국의 이라크 점령정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조짐이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전 총리는 21일 "미국인은 단세포여서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강요하는 버릇이 있어 아랍에서 실패한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또 스페인 등 이라크에서 군대를 철수하겠다는 국가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나친 미국 지지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이라크 문제로 자민당이 패배하면 고이즈미 총리는 물러날 가능성이 크다. 국내정치적 계산에다 이라크 문제가 국제협조 체제로 전환될 것에 대비, 외교 역량을 높이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도쿄신문은 22일 "이라크 정책을 유엔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한 정지작업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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