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같은 영상미 국내 첫선-영화 "랜드 앤드 프리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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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영국감독 켄 로치(59)는 국제적인 명성에 비해 우리나라에는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작가다.로치는 영국에서 가장 정치적인 영화감독으로 꼽히며 주로 사회주의노선의 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80년대 대처총리 시절 가장 검열을 많이 받은 작 가이기도 하다. 67년 『불쌍한 암소』로 감독데뷔한 이래 항상 영국노동계급과 실직자들에게 눈을 돌렸고,국가안보.북아일랜드문제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들을 일관되게 다루어왔다.특히 다큐멘터리의 리얼리즘정신에 투철한 영상미학으로 세계영화계에서 독창적 인 감독으로 존중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치상황과 상업성 부족이라는 어려움이 맞물려 그동안 국내개봉이 시도되지 않았던 로치의 작품이 올해 잇따라 선보일 예정이어서 영화팬들의 기대를 모은다.
우리나라에서 공개될 첫 작품은 5.18에 맞춰 개봉되는 『랜드 앤드 프리덤』(Land And Freedom.땅과 자유).
로치감독이 처음으로 영국을 벗어나 국제문제에 눈을 돌린 작품으로 1936년의 스페인내전을 다루고 있다.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받았으며 로치감독의 최대 야심작으로 꼽힌다.
또 오는 11월에 개봉할 『레이닝 스톤스』(Raining Stones)는 두 중년실업자의 해프닝을 그린 드라마로 93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차지했다.
『랜드 앤드 프리덤』은 공화군측의 다국적군으로 스페인내전에 참여하게 되는 영국 청년공산당원의 체험을 통해 실패한 반파시스트운동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전달하고자 한다.
주인공은 영국 리버풀출신의 실직자 데이비드 카.노동계급의 답답한 일상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던 그는 한 스페인 시민군의 연설을 듣고 스페인으로 달려간다.그곳에서 영어사용 시민군부대에배속된 그는 구식장총을 메고 프랑코가 이끄는 파 시스트진영과 대치한다.이 부대에는 IRA출신의 아일랜드청년,무정부주의자들,사회주의자들등 국적과 생각이 각기 다른 청년들이 진보적 사회에대한 열정 하나로 뭉쳐 싸움을 계속해나간다.그러나 혁명은 이상과 열정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는 것 .토지공동 분배문제를 논의하는 마을회의에서는 약간의 땅을 지닌 소작농과 땅이 전혀 없는소작농 사이에서조차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게다가 공산주의자들이 새로 결성한 인민군에 시민군이 가담할 것인가의 여부를 놓고도 격렬한 토론이 벌어 지는등 의견통합이 쉽지 않다.결국 무정부주의자.시민군.공산주의 군대는 모두 노동자출신으로 한때 함께파시스트에 대항해 싸웠건만 이제는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되고 스페인내전은 프랑코의 승리로 귀결된다.
로치감독은 시민군과 스탈린의 소련이 이끄는 국제여단등 반파시스트전선 내부의 갈등과 배신을 리얼하게 그려냄으로써 자신의 노선을 떠나 객관적인 시선을 놓치지 않고 있다.또 한 장소에서 필요한 장면들을 한꺼번에 찍어 나중에 편집하는 방 식을 배제하고 순서대로 촬영하는 리얼리즘적인 연출로 사건과 감정의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리고 있다.
로치감독은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배반당한 혁명의 전형인 스페인내전은 20세기 세계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말한 적이 있다.그는 『랜드 앤드 프리덤』을 만들기위해 시나리오작가인 짐 앨런과 5년동안 작업하는 열정을 보였다.
이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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