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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신두리 사구 보존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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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 해변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돼 있는 해안 사구(沙丘)지대다. 이곳이 1990년대 들어 군사보호구역에서 해제된 뒤 토지소유주들이 재산권을 행사하며 개발의 시비가 끊이지 않자, 급기야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개발을 제한하고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소송까지 제기할 정도였다.

신두리의 해안 사구는 겨울철에 강한 북서풍을 타고 날아온 모래가 쌓여 만들어졌다.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모래 언덕은 끝없이 이어진 바닷가를 호위하듯 에워싸고 있으며, 비단결처럼 고운 모래 틈에는 초록의 계절을 그리워하는 생명들이 부끄러운 듯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불모의 땅처럼 보이는 이곳에도 생명의 경이로움은 화려한 잔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신두리의 해안 사구는 희귀 동식물의 보고(寶庫)로 알려져 있다. 모래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2m가 넘는 뿌리로 수분을 빨아올리는 통보리사초를 비롯한 다양한 사구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광범위한 해당화 군락은 서해안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신두리 사구에만 남아 있다. 예전에 파란 보리밭 사이로 날아와 봄 소식을 전해주던 종다리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 황조롱이도 이곳에서 둥지를 틀고 있다.

모래에 깔때기 모양의 함정을 만들어 독특한 방법으로 먹이를 사냥하는 일명 개미귀신이라 불리는 애명주잠자리애벌레, 초지에 방목한 소의 배설물로 경단을 빚어 땅속으로 굴려가 먹이로 사용하는 왕소똥구리, 온몸에 표범 무늬가 있는 표범장지뱀, 왕권의 후계를 상징하듯 등에 두 개의 금줄이 선명한 금개구리 같은 멸종 위기의 희귀종도 서식하고 있다. 이처럼 신두리의 사구지대는 인간과의 공존에서 밀려난 생명체의 마지막 은신처였다.

그러나 이곳도 개발의 물결은 미처 피할 수 없었던지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중간 부분의 사구는 걷어져 석축이 쌓였고, 그 위엔 건물이 들어차 있었다. 원시의 모습이 남아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해변의 사구 일부는 훼손됐고, 지금도 사구에는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었다. 해변에서 바라본 사구는 몹시 위태로워 보였다. 만약 이곳마저 개발의 물결에 휩쓸린다면, 인간도 자연에서 버림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선진국에서는 사구를 버려진 모래땅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과 관련된 귀중한 자원으로 인식해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다. 그것은 자연생태계에는 경제 논리로 따질 수 없는 숨은 가치가 내재돼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신두리 사구의 사례는, 세수(稅收) 확보를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발이란 미명 아래 국토의 곳곳을 파헤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무원칙한 개발 정책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최진규 충남 서령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