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미국과 유럽도 사정이 있었다. 미국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발목이 묶여 있는 데다 대선을 앞두고 있어 또 다른 전선을 펼칠 여유가 없었다. 미국은 오히려 이란이나 북한 핵 문제 해결에서 러시아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에너지 수요의 25%가량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도 그루지야를 위해 러시아에 총을 겨누기에는 무리였다. 또한 사카슈빌리가 집권했을 때만 해도 서방 세계는 그를 옛 소련권에 민주주의를 전파할 구세주로 생각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그가 러시아에 대해 도발을 자주 하자, ‘통제 불능 인물’이란 인식이 생겼다. 결국 국제정치의 냉정함을 모르고, 무모한 도발을 한 사카슈빌리는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됐다. 그루지야는 독립을 요구해 온 친러시아 성향의 남오세티야·압하지야 등 2개 자치공화국에 대한 지배권을 잃고, 사카슈빌리는 실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유철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