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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기춘 ‘원희형 미안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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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은메달을 목에 건 왕기춘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기춘아, 고개 떨굴 필요 없다.”

기구한 인연의 두 사나이 왕기춘(20·용인대)과 이원희(28·한국마사회)가 베이징에서 함께 아픔을 나눴다. 11일 베이징과학기술대 체육관에서 열린 베이징 올림픽 남자 유도 73㎏급 결승전에서 왕기춘(20·용인대)이 상대의 기습 공격으로 한판패를 당하자 왕기춘은 울었고, 이원희는 허탈해했다.

왕기춘은 결승전에서 엘누르 맘마들리(아제르바이잔)에게 경기 시작 13초 만에 발목잡아메치기 공격을 당해 힘 한번 쓰지 못하고 무너졌다. 1회전부터 8강전까지 3경기 연속 한판승을 따내며 좋은 출발을 보였지만 8강전 레오나르두 귈레이루(브라질)와의 대결에서 갈비뼈에 금이 가는 큰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부상에 대한 걱정이 집중력을 흩뜨렸고 경기 초반 허점을 보이는 빌미를 제공했다. 왕기춘은 8강전 직후 대기실에서 어긋난 늑골 부위를 붕대로 감는 임시 조치 뒤 곧바로 경기에 나섰다.

“가족과 그동안 도와주신 분들에게 죄송하다”고 소감을 밝힌 왕기춘의 마음에는 선배 이원희를 향한 미안함도 배어 있다. 2006 도하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이원희의 훈련파트너로 태릉선수촌에 입성, 기량이 일취월장한 왕기춘은 결국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하던 이원희를 꺾고 베이징행 티켓을 따 냈다.

하지만 TV 해설을 하며 경기를 지켜본 선배 이원희는 후배의 등을 두드려줬다. 이원희는 “울 필요가 없다. 은메달도 대단한 것이다. 아직 기춘이는 어리다. 마음을 다스리는 힘을 더 키워 다음 올림픽을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왕기춘을 위로했다. 하지만 “선발전에서 기춘이에게 졌을 때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베이징행을 선뜻 양보했다. 만약 기춘이가 금메달을 땄다면 아쉬움이 하나도 남지 않았을 것”이라며 인간적인 아쉬움을 솔직히 인정하기도 했다.

결국 이원희를 넘어뜨린 뒤 받은 국민적인 관심은 스무 살 청년에겐 감당하지 못할 부담이 됐다. 이날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왕기춘의 아버지 왕태연씨는 “차마 옆에서 지켜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의지가 굳센 아이지만 이제 스무 살이다.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에 부모인 우리도 잠을 제대로 못 잤다”며 안타까워했다.

자신을 죄어오는 심리적인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왕기춘은 병적으로 훈련에 매달렸다. 매일 태릉선수촌을 찾아 아들을 만난 왕태연씨는 “대회가 다가올수록 얼굴이 몰라볼 정도로 상해 있었다”고 전했다. 서울체고 시절 업어치기 훈련을 한다며 10㎏짜리 해머를 밤새 모래 바닥에 내려친 일화를 남긴 왕기춘은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는 몸무게가 하루 3㎏ 이상 빠질 정도로 혹독히 훈련했다.

왕기춘은 “부상을 잊고 결승전에 임하려 했는데 너무 일찍 기술을 허용하고 말았다. 열심히 했지만 그래도 부족함을 느꼈다. 앞으로 더욱 완벽히 준비를 하겠다”며 쓸쓸히 돌아섰다.

베이징=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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