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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 칼럼

인권문제를 다시 들고 나온 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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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마지막 아시아 순방은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경제·안보적 관심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마지막 아시아 순방에 앞서, 혹은 순방 도중에 갑자기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보고 놀란 사람이 많다. 좌파 성향의 신문과 블로그들은 부시 대통령의 이 같은 강경한 태도가 태국과 중국 방문을 망쳐놓을 것이고, 북한과의 관계 진전을 방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는 부시 대통령이 인권문제에 개인적으로 깊은 관심이 있다는 점을 의심치 않는다. 그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이 국제사회는 물론 한국으로부터도 외면당하고 있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는 2005년 연설에서 ‘자유’라는 의제를 두 번째 임기의 최우선 순위로 삼았다. 그러나 아시아 관련 인권정책에서 그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그는 북한에 대해 체제전복 전략을 추구하지도 않았고, 북한의 핵개발과 인권문제를 악화시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 남북한의 화해를 지지했다. 그는 중국의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에게 인권과 종교적 자유를 신장하도록 압박하며 이러한 조치들이 중국의 지속적 경제성장과 국가 발전에 왜 중요한가를 설명하려고 애썼다.

부시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전 미국의 많은 인권운동가들은 부시 행정부가 실제로 아시아의 인권문제에서 후퇴하고 있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미국은 지난해 8월 불교 승려들의 평화적 시위를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올 5월 사이클론 피해 때 국민의 고통을 외면한 미얀마 군사정권을 강력히 비난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다른 아시아 지역의 인권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 표명과 행동은 강도가 약해진 것처럼 보였다. 미국의 대북 정책 변화와 평양과의 외교적 협상 노력은 국무부의 연례 인권보고서가 북한의 인권문제 비판 수준을 누그러뜨린 것과 나란히 이루어졌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제이 레프코위츠 미 국무부 북한 인권특사의 공개적 불협화음도 그 연장선에서 불거진 사건이었다.

중국 인권문제에 있어서도 미국의 입장이 부드러워진 것처럼 보였다. 부시 대통령이 중국 지도부에 인권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두 가지 다른 이슈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이끄는 미·중 전략경제 대화와 북핵 6자회담이 그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아시아 지역 인권문제에 큰 무게를 두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가 아시아 순방에 앞서 백악관에서 중국 반체제 인사들을 만난 것이 놀라움을 불러일으켰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이 다른 나라의 내정에 무례하게 간섭하려 들고 있다고 비난하며 이런 놀라움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부시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이 대북 정책에서 인권문제의 중요성을 재확인하자 평양과 한국의 좌파 언론은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북한이 비핵화 검증 요구를 수용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데 미국이나 한국의 인권문제 언급이 결정적 역할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태국 방문 기간 부시 대통령이 발표한 중국 인권 관련 성명이 북한의 비핵화나 미·중 통상마찰과 관련한 중국의 협력을 방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 지도부는 오히려 부시 대통령이 올림픽에 참석해 준 데 깊이 감사하고 있다.

민주국가의 국민은 자신들의 정부가 인권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길 원한다. 인권문제를 무시할수록 더 많은 조치를 취하라는 압력은 커질 것이고, 이는 인권문제에 지속적 관심을 기울인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비록 이러한 관심이 외교적으로 불편할 때조차도 말이다.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정리=유철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