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강1만리>제2부 강서.안휘성-산수화의 고향 황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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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다섯 봉우리 천하명산에 올라 더이상 산을 보지 않았더니, 오늘 황산에 오르니 천하에 더이상 산이 없구나 -이름 모를 옛 시인의 황산예찬에서당대(唐代)의 시인 이백(李白)이 「대지의 꽃(大地之花)」이라고 찬탄한 황산(黃山)은 안휘성 남쪽 절강성과의 경계지역에 위치해 있다.72개의 기기묘묘한 봉우리,34곳의 동굴,24줄기 계곡에 16개의 온천을 지닌 황산은 그야말로『천하 의 절경이 모두 모였다(天下美景集黃山)』고 할 만하다.
그래서인가,예부터 황산의 웅장한 모습을 『태산의 위용과 화산의 험준함에 형산의 안개구름을 더하고 여산의 나는 듯한 폭포와안탕의 절묘한 바위,여기에 아미산의 청량함까지 곁들였다』고 비유한다. 취재팀이 황산을 찾은 것은 삼복(三伏)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산꼭대기까지 까마득하게 꼬불꼬불 난 계단길에는 가마꾼들이 앙상한 종아리를 내놓고 호객중이었다.땀방울로 얼룩진 계단길 위에는 케이블카가 구름 속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황산의 꼭대기에 오르자 홀연 눈앞에 낯익은 정경이 광대하게 펼쳐진다.바로 실물산수화다.깎아지른 듯한 봉우리의 숲(峰林)과흐드러진 소나무(奇松),온갖 형상의 바위(奇岩)와 구름바다(雲海)-일컬어 「황산사절(黃山四絶)」이다.
숨 막힐 듯 뻗어나간 봉우리들은 『환상 속의 그림이라도 실제의 경이로움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바위 틈에 뿌리를 내리고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외롭게 선 소나무는 옛 선비의 절개를 느끼게 한다.금세라도 쓰러질 듯 한 바위는 불균형 구도의 진수를 보여주고,잔잔한 구름바다 위로 점점이 떠있는 산봉우리 섬을 보노라면 문득 바다 위에 서 있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구름바다는 어쩌면 2억년전 황산 일대가 망망대해였던 때의 향수인지도 모른다.그래서 황산 은 북해.서해.천해.황해 등 바다이름으로 불린다.
황산은 변덕쟁이다.하루에도 스물네번씩 얼굴을 바꾼다.산자락 아래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곧바로 비를 뿌리고,금세 파아란 하늘로 쌩끗 웃는다.봄에는 뿌옇게 송홧가루가 날리고,여름에는 폭포가 굉음을 울리며,가을에는 빨갛게 타는 노을이 온 산을 두르고,겨울에는 처연하게 눈꽃이 핀다.
아름다움은 걸작을 남기는 법.황산은 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글.그림.노래의 소재가 돼 왔다.그러다보니 청(淸)대에는 아예 「황산화파」라는 유파도 생겨났다.대표적인 작가가선성(宣城)의 매청(梅淸).매경(梅庚)과 청초( 淸初)의 거봉석도(石濤).홍인(弘仁)등이다.이들중 석도는 황산의 혼령(靈)을 얻었고 매청은 그림자(影)를 터득했으며 홍인은 질(質)을 얻었다고 평해진다.특히 승려화가인 홍인(1610~64)은 만년에 황산의 모든 봉우리와 사찰.정자 까지 주유하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넓은 의미로 황산화파라고 불리는 신안(新安)화파는 사사표(査士標).손일(孫逸).왕지서(汪之瑞)등 불세출의 화가를 남겼다.
신안화파의 명칭은 이들이 활약한 무대인 휘주(徽州)의 옛 지명이 신안인 까닭이다.간결하면서도 담백한 필법과 맑 은 먹맛을 통해 문인화적 경향을 구사하고 있다.
황산에는 오늘도 신세대 화가들이 몰려든다.소나무 아래,바위등걸 아래 화첩 등을 펼쳐놓은 화가들이 명상에 잠겨있다.옆에는 생수통을 기울여 갈아놓은 먹이 붓을 기다리고 있다.
***이 처럼 황산은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명작의 산실역할을 했지만 여기에 황산 일대의 뛰어난 문방사우,즉 붓.벼루.먹.종이가 어우러져 황산을 「산수화의 고향」으로 자리매김시켰다.
취재팀이 황산에서 내려와 둔계(屯溪)시에 이르자 언뜻 향긋한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힌다.이곳이 바로 『너무 아름다워 차마 갈수 없다』는 휘묵의 본산이다.
청대부터 휘묵의 전통을 이어온 호개문(胡開文) 묵창.진한 향내와 거무튀튀한 먹가루가 뒤섞인 공장에는 2백여명의 직원이 7천여종의 먹을 생산해내고 있었다.분업형태로 이뤄진 각각의 방에서는 말랑말랑한 원료를 주무르고 떡메로 친 뒤 주 형틀에 넣거나 아름다운 문양 조각이 한창이다.
『먹의 재료는 기름.연기.탄.흑색염료로 같지만 휘묵의 특징은소나무』라고 방위빈(方衛斌)부창장이 소개했다.황산 주변에 자생하는 소나무야말로 휘묵이 내는 독특한 향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물론 나름대로의 배합비율은 공개할 수 없는 노하우.『청나라때먹의 장인인 호천주(胡天柱)선생으로부터 먹배합 비법이 면면이 이어져왔으며 현 공장장인 김동홍(金東紅.41)씨가 전수자』라는설명이다.휘묵전시관에는 아기손가락만한 먹부터 절굿공이만한 것까지 각양각색이다.
절구가 있어야 떡메도 치는 법.휘묵의 진가는 훌륭한 벼루를 만나야 발휘된다.흡현(흡縣)의 흡연창(벼루공장)은 옛 선비들이하나 갖기를 소원하던 천하제일의 벼루를 생산한다.
인근의 돌산에서 나오는 재료가 「흡연(흡硯)」의 원자재다.잘게 갈리면서도 단단하고 조각하기가 좋아 벼루라기보다 하나의 예술품으로서 감상의 대상이다.전시관에는 엄지손톱만한 것부터 길이1.5 폭 50㎝의 대형 벼루에 이르기까지 다양 하다.그러나 현재는 재료의 부존량이 적어 생산을 줄이고 있다.
이와함께 황산의 동북지역에 위치한 선성은 1천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종이의 명산지다.붓글씨를 쓰는 종이의 대명사 「화선지(화宣紙)」의 「선(宣)」자는 바로 이곳 선성의 지명에서 유래한것이다. 그런가하면 황산의 북쪽 호주(毫州)는 지명에서 알 수있듯 붓의 명산지.아무리 먹을 듬뿍 찍어도 뭉텅뭉텅 흘러내리지않는 선필(宣筆)이다.
***호 주시의 풍락천 변에는 붓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의 7층석탑이 있다.문방사우가 발달하는 바람에 숱한 시인묵객들이 모여 찬란하게 꽃피웠던 명(明)나라 시절의 「휘주문화」를 기념하기 위한 문봉(文峰)탑이다.탑앞에는 벼루모양의 조형물이 놓 여있다.이는 풍락천의 물로 흡현의 벼루에 휘묵을 갈아 선필로 선지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렸던 것을 상징한 것이다.
하지만 취재팀이 찾았을 때 문봉탑 일대는 폐허를 방불케 했다.잡초가 우거지고 탑의 벽면은 낯뜨거운 낙서가 어지러웠으며 탑꼭대기는 비바람 등으로 크게 훼손돼 있었다.이는 최근 중국인들이 붓대신 볼펜과 연필을 즐겨 쓰기 때문일까.
여하튼 황산은 신이 빚은 아름다움의 극치에 인간의 섬세한 손길이 만들어 낸 문방사보가 어우러져 한덩어리 걸작이 됐다.곳곳에 석각으로 새겨진 운해기관(雲海奇觀).기상만천(氣象萬千)등 글귀와 이백이 노닐었던 취석(醉石)에는 『아무리■ 그려도 그릴수 없더라』는 탄식이 배어있다.
▒다음회는 「도자기 예술의 극치 경덕진요(窯)」편입니다.
글=최병식 경희대 미술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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