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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배명복 시시각각

레나테 할머니는 평양에 갔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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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불교에서 인생은 고해(苦海)다.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는 해탈(解脫)에 이르지 않는 한 벗어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고통이다. 삶이 고해인 또 다른 이유는 집착 때문이라고 불교는 가르친다. 사랑하는데도 헤어져야 하는 ‘애별리고(愛別離苦)’도 결국은 사람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고통이라는 것이다. 집착하지 않으면 이별의 고통도 없는 것일까.  

독일인 레나테 홍 할머니가 헤어진 지 47년 만에 남편 홍옥근씨를 평양에서 만났다는 감동적인 스토리가 본지에 실렸다(8월 6일자 1, 2면). 1961년 4월 동독 예나 역에서 눈물의 생이별을 할 당시 20대 꽃다운 나이였던 두 사람은 백발이 성성하고, 주름이 깊게 파인 70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어 감격의 재회를 했다. 근 반백년을 참아온 레나테 할머니의 애별리고를 집착으로 설명하기엔 인간이 만든 정치와 체제의 부조리가 너무 크다.

레나테 할머니는 북한 유학생이었던 홍씨와 결혼해 동독에서 생활하던 중 북한의 유학생 소환령 탓에 졸지에 남편을 떠나보내야 했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을 키우며 할머니는 지금껏 혼자 살았다. 재결합 노력이 정치적 이유로 좌절되자 홍씨는 북한에서 재혼했고, 레나테 할머니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고통을 끝까지 홀로 삭였다.

본지 보도에서 촉발된 국제사회의 관심과 이에 대한 북한의 부담감이 결국 지난달 레나테 할머니의 방북이라는 결실을 낳았고, 할머니는 홍씨와 평양에서 11박12일의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죽기 전에 꼭 한번 보고 싶다”던 꿈은 이루어졌지만 영영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안타까운 이별의 고통 앞에서는 그 기쁨도 잠시였을 것이다.

레나테 할머니의 평양 상봉을 감동의 눈으로만 바라보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산의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88년부터 지난달 말까지 통일부의 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에 등록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수는 12만7268명이다. ‘6·15 공동선언’이 나온 2000년 이후 지금까지 모두 16차례의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있었지만 헤어진 가족을 만나는 데 성공한 남한 사람은 약 1만5000명에 불과하다. 지금도 자기 차례가 오거나 생사가 확인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이 훨씬 많다.

신청자의 대부분이 홍씨나 레나테 할머니처럼 고령인 점은 더 큰 문제다. 통일부에 따르면 매년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중 2000∼4000명이 사망하고 있다. 등록된 상봉 신청자 10명 중 거의 3명꼴인 3만5484명이 그동안 차례를 기다리다 숨졌다. 그중 70세 이상이 74%다. 사랑하는 사람을 결국 못 보고, 불귀의 객이 되는 숫자는 앞으로 더욱 빠르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서둘러 재개해야 하는 것은 그래서다. 면회소까지 지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상봉 행사는 전면 중단 상태다. 북한의 무성의 탓이 크다. 마음에 안 드는 정권이 출범했다고 상봉 행사까지 중단한 것은 비인도적이다. 북한은 적십자 회담에 나와야 한다. 홍씨는 동독 정부가 레나테 할머니의 북한행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을 두고 “정치란 때론 바보 같은 일을 저지르곤 한다”고 할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이산가족 상봉이 중단된다면 이야말로 바보 같은 정치다.

부모가 자식과 다시 볼 기약 없이 헤어져야 하는 고통이 애별리고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혈육의 정을 비로소 깨달은 형제·자매가 다시 헤어져야 하는 고통도 애별리고다. 꽃다운 나이에 부부가 원치 않게 헤어진 것도, 백발이 되어 만나자마자 다시 떨어져야 하는 것도 애별리고다. 남북 당국은 그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

다음 주 8·15에 맞춰 이명박 대통령은 건국 60주년 기념사를 할 예정이다. 그 연설이 남북 관계 경색을 푸는 전기가 돼 중단된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되기를 기대한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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