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극단 완자무늬의 '운명에 관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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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우연으로 얽히는 삶이란 어떤 「법칙」자체가 끼어들기 어렵게 마련이다.그런데 인생의 중요한 상황마다 될 일도 안되게 하는 이른바 「머피의 법칙」이 적용된다면 어떨까.잘못 꼬이는 한 인간의 삶은 훔쳐보는 일조차 편치 않게 만든다.
극단 완자무늬가 지난달 31일까지 학전소극장에서 공연한 『운명에 관하여』(이창동 원작,김형주 연출)는 억세게 재수없는 한개인사를 소재로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 작품이었다.전쟁고아 출신김흥남의 인생유전을 그린 이 작품은 절망과 희 망이 교차되는 삶의 무게를 유머로 치환,가볍게 풀어나간다.
딸아이의 국민학교 졸업식에 들른 아버지 김흥남이 이상하게 엇갈려간 그의 인생 얘기를 관객들에게 털어놓는다.국민학교 학예회연극 『두꺼비가 된 왕자』 공연도중 기껏 왕자역을 맡았으나 공주와 키스하려는 찰나 정전이 된 것은 그의 운명 에 대한 일종의 예고편이었다.구두닦이.때밀이를 전전하며 돈을 모으지만 사기꾼에게 모두 털리고,가짜 아들 행세를 하며 만난 재벌 영감이 친아버지로 밝혀지지만 만난 다음날 죽고 만다.
무대에서는 현실과 과거가 빠른 속도로 교차된다.1인 다역을 소화해 내느라 무대를 바삐 오간 배우들의 열정어린 연기는 웃음과 박수를 자아냈다.
4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주 어린 고아역부터 청년 구두닦이.때밀이등 주인공 김흥남역을 맡은 민경진의 연기도 눈길을 끌었다. 이 연극에서 운명은 사랑의 중요성을 일깨운다.아내가 사랑을 통해 운명에 쫓기는 김흥남에게 삶의 의미를 일깨워 주는 것.이 무대가 따스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인간의 힘으로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은 있을 수 있지만 사랑은 때로는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이 연극이 주는 항변성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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