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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거해 온 '만다라' 작가 김성동, 독자들과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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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구도(求道) 소설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57)씨의 거처인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비사난야(非寺蘭若)'. 6번 국도에서 가지 친 왕복 2차로 지방도로를 벗어나 차량 두대가 오가기 어려울 만큼 폭이 좁은 샛길을 달리기를 10분여, 포장도로가 끝난 곳에서 다시 경사진 돌길을 걸어올라가야 하는 첩첩산중 소설가의 집이 지난 17일 오후 모처럼 방문객들로 붐볐다.

대한불교 조계종 달마사가 지난달 문을 연 달마문예대학 산문.운문반 수강생 10여명이 대학 학장인 김씨의 문학 강연을 듣기 위해 이날 김씨 집을 찾은 것이다.


문학강연 중인 김성동(左)씨. 김씨의 오른쪽은 ‘친일불교론’을 쓴 혜봉 스님. [달마문예대학 제공]

*** "여대생 보살 덕에 문학 눈떠"

가쁜 숨들을 몰아쉬는 수강생들에게 김씨는 석간수(石間水.바위 틈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에 잔대.대추.밤 따위를 넣고 끓였다는 물부터 내놓았다. 수강생들이 숨을 고르자 김씨는 "'절 아닌 절'에 사는 비승비속(非僧非俗.중도 아니고 속인도 아님)을 찾아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건넨다. '난야(蘭若)'는 산스크리트어로 절이라는 뜻. 김씨가 스스로를 비승비속으로 표현한 것은 1965년 고교를 자퇴하고 열아홉 나이에 출가해 12년간 승려 신분이었던 이력, 하산해 소설가가 되고 나서도 삶의 근거지와 소설 세계 모두에서 좀처럼 절집 주변을 벗어나지 못했던 처지를 염두에 둔 것이다.

후배 소설가 김도연(38)씨 등과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었던 때문인지 김씨의 문학 강연은 금세 흥이 오른다.

"시는 사상(捨象)한다. 이것 저것 끊어내고 겅중겅중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건너뛴다. 그런 점에서 운문은 점의 미학을 지향한다. 반면 산문은 선의 미학이다. 봉우리 사이 골골샅샅을 짯짯이 살펴보아야 한다. 운문이 천만명의 중생을 한 줄에 담아낸다면 산문은 중생 하나하나를 이잡듯이 그려내야 한다."

대부분 40~50대인 늦깎이 문학도들의 눈빛이 순간 반짝인다. 일부는 고개를 끄덕거린다.

김씨의 강연은 경기도 안성 칠장사에 머물던 중 여대생 보살과의 짜릿했지만 짧았던 만남, 그녀를 통해 문학에 눈뜨게 된 사연, 등단 과정 등 문학을 평생의 업으로 삼게 된 인연을 밝히는 것으로 이어졌다.

특히 여대생의 제의로 절 근처 호젓한 폐암자를 단둘이 찾아갔다가 여대생이 느닷없이 억새풀숲에 자리를 잡고는 가곡을 불러 젖히는 바람에 황망히 산길을 뛰어내려왔다는 대목은 압권이었다. 그길로 호남선 열차를 타고 절을 떠나 한달여를 정처없이 떠돈 끝에 다시 절로 돌아와보니 여대생은 떠난 뒤였고, 여대생은 얼마 안 있어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산문집 '문학을 지망하는 청년에게'를 우송해 왔다고 한다.

"'노랑 할배(부처)의 가르침만 따르면 되는 줄 알았더니 문학이란 것도 있구나'하고 문학에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는 것이다.

두시간 남짓한 강연이 훌쩍 끝나고 수강생들의 자기소개 시간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절 아닌 절'을 찾은 수강생들의 다양한 사연이 김씨를 감동시켰다.

*** '만다라' 300번 읽은 수강생도

빌딩관리업을 한다는 박진남(50)씨는 "선생님의 작품을 너무 좋아해 '만다라' 초판부터 모든 책을 가지고 있다"고 했고, 대학을 중퇴했다는 이정은(24)씨는 "고교시절 '만다라'를 처음 읽었는데 너무 감동적이서 자꾸 읽다 보니 300번 쯤 읽었고 소설을 거의 외울 정도가 됐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쯤 되면 강연 후 술자리는 끝날 시간을 기약하기 어려운 법. 김씨와 수강생들은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문학과 인생을 얘기했다.

양평=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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