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회교섭단체 구성 기준이 고무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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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자유선진당이 지난 주말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은 지나친 당리당략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개정안은 원내교섭단체 구성요건을 현행 20인 이상에서 15인 이상으로 낮추는 내용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선진당은 교섭단체로 인정받게 된다.

정당이 교섭단체가 되려는 이유는 분명하다. 실익을 챙기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제도적 보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섭단체가 되어야 국회 운영의 주체로 인정받는다. 국회 운영을 위한 모든 협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상임위원장 자리도 확보할 수 있다. 국회정책연구위원을 거느릴 수 있으며, 별도의 국고보조금까지 받을 수 있다. 국회 사무실이 넓어지고 당직자들 일자리도 구해줄 수 있는 등 드러나진 않지만 짭짤한 혜택들도 많다.

교섭단체가 이렇듯 좋은 장치임에도 불구하고 국회법에 제한을 둔 까닭도 분명하다. 교섭단체가 너무 많아도 곤란하기 때문이다. 국회는 교섭단체 간의 합의를 바탕으로 운영된다. 현재 교섭단체가 한나라당과 민주당 두 곳뿐인데도 합의가 되지 않아 국회가 공전하고 있다.

2004년 정치관계법 개정으로 앞으로 계속 소수 정당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의석수를 늘리고, 1인 2표제(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지구당과 합동연설회를 폐지하는 등 법 개정으로 정당의 원내 진입장벽이 대폭 완화됐기 때문이다. 교섭단체의 난립을 막는 장치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따라서 특정 정당의 당리당략에 따라 국회 운영의 기본 틀인 국회법을 바꿔선 안 된다. 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2000년 당시 17석이던 자민련이 교섭단체가 되려고 국회법을 바꾸려 하자 반대했던 한나라당 총재였다. 당시 반대했던 한나라당은 이제 ‘우군(友軍) 확보’ 차원에서 개정에 긍정적이다. 한나라당은 지금 170석 이상의 절대 과반수를 확보하고 있다. 그런데 또 무슨 우군이 필요한가. 그보다는 오히려 민주당과 건전한 경쟁체제를 갖추는 것이 의회정치에 더 바람직하다. 정략에 따라 법을 바꾸기에 앞서 국회 정상화를 위한 대화·협상의 능력부터 길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