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산마을><산사람>9.인제군 방동리-이일용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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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어떨땐 목숨을 걸어야 했어.장마철에 물길이 세지면 엄청난 크기의 황장목을 다루기가 쉽지 않았거든.나무가 바위에라도 걸리면 물살을 헤치고 들어가 옮겨야 했어.운나쁘면 물에 떠내려 가기도 하고 나무에 받혀 크게 다치기도 했지.』 이일용(80)씨는 방동리에서 유일하게 남은 「적심꾼」이다.적심꾼은 나무를 물에서 다루는 사람을 말한다.나무꾼과 뗏목꾼 사이에서 나무를 강가로 운반한 뒤 이를 물위에 띄우고 이를 합강리에서 수거해 뗏목으로 묶는 과정이 모두 적심꾼 몫이다.
위험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마을에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이일을 주로 맡았고 노임도 많았다.목숨까지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李씨는 20대초반 방동리에서 몇년간 적심꾼으로 일했다.李씨는 당시 동네처녀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李씨는 적심꾼을 그만둔 뒤 농사일을 비롯해 여러가지 일을 했지만 적심꾼 시절처럼 흥이 나지는 않는다고 했다.
아직도 적심꾼 시절을 그리워하는 李씨는 어느새 방동리에서 원로가 됐다.그래서 서낭당에서 산제나 기우제를 지낼때 제주는 李씨 몫이다.
李씨는 술이라도 한잔 걸치면 곧잘 눈을 지그시 감고 흥얼거리곤 한다.마치 눈에는 방태천에 떠내려가는 황장목이 보이고,귀에는 뗏목아리랑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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