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여대야소] "새 정치 … 그러나 견제" 民의 메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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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 당직자들과 비례대표 후보들이 15일 밤 당사에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보며 환호하고 있다.[박종근 기자]

17대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은 새 정치를 하라는 것이다. 16대 국회에서 특히 두드러진 부패의 정치에 종지부를 찍으라는 것이다. '개혁'을 앞세운 열린우리당이 안정의석을 확보한 원내 1당이 되고, 민주노동당이 약진한 것은 그걸 말한다. 신인들이 대거 당선된 것도 같은 의미다.

자민련의 몰락은 3김 시대가 끝났음을 뜻한다. 보스 정치와 패거리 정치, 지역주의 정치로 대변되는 '3김식 정치'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준 선거 결과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을 거론하며 호남의 지역정서에 의존하려 했던 민주당이 참패한 것도 3김시대의 종식과 맥을 같이한다.

거여(巨與) 탄생의 이면엔 '탄핵 심판'의 측면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수의 유권자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정치적으론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표로 말한 셈이다. 그래서 "盧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재신임을 받았다"는 주장이 여권에선 나온다.

민심은 열린우리당에 큰 기회를 줬다. 그간 거야(巨野)에 눌려 법안 하나조차 온전히 처리할 힘이 없었던 여당에 국회를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는 권리를 준 것이다.

"힘을 보태줄 테니 국정을 한번 제대로 운영해 보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민심은 그러면서도 여당을 견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민주당과 자민련을 철저히 외면하면서도 한나라당엔 개헌 저지선(100석)을 훨씬 넘는 의석을 준 것이다. 이로써 정치권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양당 구도로 새롭게 재편되게 됐다.

유권자가 한나라당에 많은 의석을 준 것은 열린우리당의 독주를 견제하고 감시하라는 뜻이다. '3.12 탄핵'이후 한때 개헌선(200석)을 넘을 것 같았던 열린우리당에 그만큼의 의석을 주지 않은 것도 유권자의 견제 심리가 발동한 까닭이다. '차떼기'낙인이 찍혀 있던 한나라당으로선 박근혜 대표의 호소대로 '마지막 기회'를 한번 더 잡은 셈이다.

민심은 이번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 3공(共) 이후 국회엔 발을 붙이지 못했던 진보 정당인 민주노동당에 원내 진입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민노당의 제도권 진출은 한국 정치에서 '보수 정당의 독과점 체제'를 깨는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총선은 빛과 함께 그림자도 남겼다. 선거 결과는 지역주의의 벽이 여전히 높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열린우리당의 '전국 정당' 꿈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은 것도, 한나라당이 호남에서 또다시 버림받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이념과 세대 차이에 따른 대립과 갈등을 치유하는 일도 시급하다. 새 출발하는 정치권이 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묻지마 투표'현상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인물과 정책.비전 등을 꼼꼼히 따져보지 못하고 후보나 정당에 대한 막연한 인상이나 선호도만 가지고 투표한 경우가 많았다면 그 후유증이 17대 국회에서 부실(不實)정치와 부실입법으로 나타날지 모른다.

이상일 기자<leesi@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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